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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Aug 14. 2020

그저 그런 하루가 하나의 순간이 된다는 건

남의 집 마당의 고양이도 귀엽지만 나는 우리 집 강아지가 더욱 사랑스럽다

코코와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산책  중간에는 열 평 남짓한 마당이 있는 폐가가 있다. 그곳을 지나다 마침 마당에서 고양이 가족이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귀한 장면이다 생각하고 한참 넋 놓고 감상 중이었는데 코코가 얼른 가자며 리드줄을 당겼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기다 문득, ‘우리 코코는 어디서 어떻게 태어난 거지?’, ‘우리 코코 애기 때는 더 예뻤겠지? 어떻게 생겼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뭉게뭉게 솟아났다.



고양이 가족. (출처: 구글 무료 이미지) 대충 이런 모습...? 사진으로 찍어둘걸!






코코와 나는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만났다. 코코와 처음 만나던 ,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호기심 가득한 눈, 티 없는 표정, 구김 없는 행동, 모든 것이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선명하다. 2년 전 우연히 휴일이 겹쳐 집에서 빈둥대던 동생과 나는 휴대전화로 귀여운 강아지들 사진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유기견 보호센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혼자 지내는 꼬미가 좀 외로워 보이기도 했고, 한 마리 더 분양 받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때만 해도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유기견 센터를 찾은 건 아니었다. 그저 충동적으로 뗀 걸음이었다.



우리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지하에 있는 유기견 보호 구역으로 내려갔다. 몇 가지 의사항을 교육받고, 탈출 방지용 펜스 안으로 들어서자 몇 마리의 유기견들이 우리를 격하게 반기며 달려들었다. 코코는 보호 구역 내에서도 다시 작은 펜스 안에 격리되어 있었는데 동생과 나를 발견하고는 거의 펜스를 뚫고 나올 기세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털이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복슬복슬 부피가 꽤 커 보였는데 실제로 몸은 굉장히 말라 있어서 그 얇고 가느다란 몸이 쭈욱, 절반 가까이 펜스 사이길게 빠져나와 있었다. 직원에게 허락을 구해 펜스 밖으로 아이를 꺼내 주었더니 두 발로 서서 폴짝거리며 어찌나 애살스레 굴던지, 도저히 안아주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코코와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유기견 출신인 코코의 정확한 출생 시기, 가족 관계 등은 알 수 없었고, 분양 받던 때 이미 코코는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지난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아가 때의 모습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런 아이를 왜 버렸을까, 전 주인에 대한 미움도 들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코코랑 만나게 해주어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코코가 서울시에서 종로구 창신동 출신의 32세 남자를 만나 새롭게 가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럴 때 보면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다. 갖은 풍파 속에서도 결국 한 곳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야 마니까.




분양 받고 돌아오던 길. 첫날 코코.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블로그를 뒤지다 보니, 예전에 썼던 자작시가 눈에 들어온다. 2018년 작 ‘원래’라는 시다.





     

엄마는 원래부터
엄마인 줄 알았다

아빠는 원래부터
아빠인 줄 알았다

가족은 원래부터
가족이고

세상은 원래부터
세상인 줄 알았다

엄마와 아빠가
억만 분의 일의 확률로 만나고
다시 한 번의
억만 분의 일이 있은 후에야

내가 있고
마침내
나의 세상이
만들어진 것임을

참 고맙고도
어려운 일임을
잘 몰랐다







처음부터 주어진 사이는 없다. 견주와 반려견의 사이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만남은 가벼운 접촉사고처럼 갑자기 찾아왔지만 결코 가볍게 생각할 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순간이 지금이던 때, 억만 분의 일의 확률이 다시 한 번 억만 분의 일의 확률로 이루어져 만난 사이다. 부모 자식, 아내와 남편, 형제자매, 친구, 스승과 제자, 직장 동료 등 어느 하나 사소한 사이가 없다. 급변하는 세상 속 관계 하나하나를 다 챙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래도 인연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만히 지친 몸을 소파에 기대면 어김없이 곁을 내어주는 착한 녀석. 코코가 나를 본다. 처음 만났을 때의 바로 그 눈으로. 유연한 등허리 너머 느껴지는 녀석의 체온이 오늘따라 더욱 따듯하다. :)




코코의 요즘. 초절정 귀요미 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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