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변화가 두려웠고, 대수롭지 않게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쩌면 내가 이상한 걸까. 남들은 뭔가 좀 바뀌면 오히려 좋아하기도 한다던데… 같은 맥락에서 나는 여행도 싫어한다. 여행을 싫어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언제나 “왜?”였다. 생활과 환경의 대부분이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여행은 언제나 내게 설렘이 아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내가 지나치게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별 것 아닌 사실 하나를 자연스레 깨닫게 됐다.갑작스러운 변화는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고, 나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변화된 환경에 묵묵히 적응하며 살아왔다는 것. 나도 남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
그런 과정 속에서 나 또한 변했다. 뭐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 나는 변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나. 돌아가며 반 아이들을 고약하게 괴롭히던 이인 조가 있었다. 수법이 교묘해 괴롭힘을 당하는 당사자는 괴로워했지만, 나머지 친구들에게는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하곤 했다. 나 역시도 그들의 장난을 지루한 일상 속의 소소한 재미로만 생각하던 관객 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연유에서인지 나는 그들의 타깃이 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근 한두 달 동안을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던 것 같다. 앞서 밝혔다시피 그들의 장난은 그 수법이 교묘해서 참지 못하고 화를 내봤자 나만 쪼잔하고 이상한 사람이 되는 그런 것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장난을 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그들과 같이 웃고 넘기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자 그들은 가랑비에 옷 젖듯 장난의 수위를 높여 왔는데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그들의 장난 세례에 쫄딱 젖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점점 더 다른 친구들 보기가 민망했고 수치심을 느꼈으며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지쳤다. 그리고 결국 일은 터지고야 말았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점심시간, 나는 밥을 빨리 먹고 와서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을 했다. 깨어 있으면 또 그들이 나를 괴롭힐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러다 진짜로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뭔가 와서 부딪히는 느낌에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일부러 그런 건지 정말 실수로 그런 건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녀석들 중 하나가 장난을 치다 내 책상과 살짝 부딪쳤고, 그 충격으로 나는 잠에서 깨면서 빨딱 몸을 일으켰다. 이미 상체를 일으킨 상태였으므로 계속 자는 척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남은 시간 나는 녀석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었다.
녀석들은 건성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재미난 놀거리라도 생긴 듯 또 열렬히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몇 차례 웃으며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결국 무시를 하기 시작했으나, 녀석들은 내가 반응을 해줄 때까지 끈질기게 나를 놀렸다. 그 정도 끈기로 공부를 했으면 아마 서울대를 가지 않았을까 싶은데 연락이 닿질 않아 알 수가 없네, 아무튼. 짜증이 났다. 밥도 서둘러 먹고, 잠도 도중에 깨고, 멈출 줄 모르는 유치한 장난질에 결국 나는 폭발했고,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철제 필통을 들어 둘 중 한 녀석의 면상에다 집어 던지며,
“그만하라고, 이 개새끼야.” …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교실엔 정적이 흘렀다. 당시 나는 심각한 나이스가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욕이라곤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샌님이었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먹고 싶은 거 다 사줄 테니 욕 한 번만 해보라고 사정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내가 교실 한복판에서 벌떡 일어나 “이 개새끼야!”라며 소리를 쳤으니…, 다들 놀랐을 만하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 말을 뱉은 직후 바로 내 경솔함을 뉘우쳤으나 이미 기차는 떠난 뒤였다. 여기서 눈을 깔면 내가 잘못한 게 될 것만 같았다. 내 잘못이 아닌데, 당한 건 난데. 나는 모든 용기를 짜내 두 녀석을 노려보았다. 이미 내 쌍욕에 당황한 녀석들은 나의 강렬한 눈빛에 한 번 더 당황한 듯 보였다(초반 기세 싸움에서 내가 이긴 듯하다). 그렇게 얼마간의 대치 상황…
불행인지 다행인지 몇 초 뒤에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나는 연필 한 자루 없이 두 주먹을 꼭 쥐고서는 수업 시간 내내 교과서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 사실 필기구가 있고 없고랑은 별개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수업 내내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야속하고, 초조한 시간만 자꾸 흘렀다. 쉬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후회가 됐다. 에이씨… 이 대 일이면 승산이 없는데…, 종 치자마자 선빵을 갈겨야 하나…, 걍 튈까…. 내가 또 달리기 하나는 좀 빠르잖아? 하, 어쩌지… 진짜 미치겠네….
뭐, 걱정과는 달리 결말은 생각보다 허무했다. 두 녀석 중 하나가 나를 찾아와 필통을 건네주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엉겁결에 나는 “어? 어어….”하며 녀석의 사과를 받아주었다(나머지 한 녀석은 끝까지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참교육 못 시킨 게 천추의 한). 이 사건이 내가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의 첫 손절이었다. 싫다고, 그만하라고, 딱 잘라 말했던 나의 소중한 첫 손절. 그리곤 얼마 뒤 진짜로 그들과는 손절하게 되었다. 별로 살갑게 말 섞으며 지내고 싶지도 않았지만 다행히도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자연스레 마주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날 괴롭히던 끈기로 서울대에 들어갔는지 궁금한데 손절을 하는 바람에 알 도리가 없다.
그때 그 사건이 계기가 되었던지 나는 자연스레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쭈뼛거리던 버릇도 사라지고, 속으로만 품고 있던 열등감도 사라졌다. 내 의견을 시원스레 이야기할 줄도 알게 되었고,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도 이전보다 훨씬 편해지고, 넓어졌다. 덤으로 욕도 좀 할 줄 알게 되었고… 이 정도면 자신 있게 성장이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
소리치기 전의 나는, 소리치고 난 후의 상황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내가 소리를 침으로써 변화할 환경이 혹시 나에게 부정적인 방향이면 어떻게 하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이전과 달리 차갑게 식어 버리면 어떻게 하지, 와 같은 걱정이 자꾸만 내 입을 틀어막았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마음속에 담아온 소리를 꺼내어 놓자 많은 것이 바뀌었고 나는 비로소 스스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다.
첫 손절 이후 내 주변이 극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변한 것은 나였다. 다행히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지금의 내가. 그때 내가 끝내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했더라면, 시원하게 욕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졸업을 했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화투판에서 판을 엎는 행위를 ‘파투(破鬪)’라고 한다.
게임은 맘대로 안 되고 화는 나고, 에라 모르겠다, 홧김에 판을 엎어 버리는 것이다. 성숙한 행동이라 보긴 어렵지만 파투를 내고 나면 어쨌든 판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과거의 내 모습이 어떠했든 말이다.
가끔은 파투 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판을 엎는 용기도 필요하다. 지금이 최악이라 느껴진다면 시원하게 엎어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등바등 가진 것을 지키면서 안정을 추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늘 하루도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스스로를 위안해봤자 내일은 친절하게 나를 위해 변해주지 않는다.
결국은 내가 변해야 한다. 오늘의 내가 변해야 나의 내일도 바뀔 수 있다. 가끔은 쥐고 있는 모든 걸 던져 버리고 새로이 시작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부분 중 많은 것들을 끊어내야 한다. 그것은 무척 아프고,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의 현명한 손절은 우리를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이끈다. 현재에 안주하면 그걸로 그만이다. 뭔가 ‘이건 아닌데…’ 싶다면 끊어내고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나는 여전히 변화가 두렵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여전히 손절해야 할 것들이 많다. 변화가 무섭고,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나는 또 어쩌면 손절할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 딱 감고 시원하게 “이 개새끼야!”하고 욕 한 번 시원하게 뱉고 끊어내야 할 것들은 시원하게 끊어내면서 살자. 현명한 손절은 언제나 옳다. ‘노답’이란 생각이 든다면 망설이지 말자. 우리, 적절히 손절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