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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Aug 03. 2020

우리가 기다림을 견뎌내야 하는 이유

인내와 결실에 대하여

이틀 전인가, 사흘 전인가 아무튼 며칠 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쓰레기를 나르는 중이었다. 마지막 쓰레기를 처리한 뒤 나무 그늘에서 잠시 땀을 식히는데 한 마리 매미가 남기고 갔을, 작고 귀여운 등껍질을 발견했다. 덥디 더운 여름, 그런 여름의 한낮 어느 순간이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에어컨이 빵빵한 곳을 찾아가야 한다. 내게 그런 장소는 집 앞 카페다. 걸어서 5분 거리가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인데, 그마저도 너무 멀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대안이 필요했다.

아예 집을 카페화하자 마음먹었다. 우선 인터넷 쇼핑몰에서 대용량 얼음 통과 얼음 틀을 구입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원액과 예쁜 머그잔도 샀다.(특히 머그잔을 고를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며칠 뒤 물건이 도착하자마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얼음 틀에 물을 받았다. 이제 얼음이 얼면 콜롬비아산 원두를 우려낸 풍미가 훌륭한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웬걸. 냉동실, 냉동실이 문제였다.


냉동실에는 도무지 대용량의 얼음 통이 들어갈 공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각종 조미료와 견과류, 제사 음식, 각종 야채, 빵, 먹다 남은 음식1, 먹다 남은 음식2 등등. 냉동실은 포화 상태였다. 음식이 너무 많아서 냉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도 않은지 음식을 담은 비닐에는 송글송글 물방울들이 얼어붙은 흔적이 보였다. 그 광경은 마치… 음식들이 더워서 땀을 흘리는 것 같았다. 그것도 냉동실에서! 한편으로는 음식들이 울고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는데 ‘제발, 먹든지 버리든지 나를 이곳에서 꺼내줘. 니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라고 울부짖는 것 같이 느껴져 더는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 이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보는 나에게도 못할 짓이고, 남아서 서서히 썩어갈 음식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무엇보다 나의 여름을 위해서 반드시 얼음을 얼릴 공간이 필요하다(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아이스크림도 잔뜩 사다 넣고 싶다. 가득 차면 비워야 하는 법. 나는 냉동실을 가득 채운 음식들을 몽땅 갖다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3번이나 왕복해야 할 정도로 방치된 음식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총 10킬로그램 정도의 음식을 버렸는데 아마 이번 달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은 평소의 몇 배는 될 것이다. 돈이 문제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는 분명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법이다.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내 돈과 노동력을 써가며 이 무더위에 냉동실을 비워낸다. 이로써 내 삶의 질은 전보다 나아질 것이었다.


버릴 것, 버리지 않을 것을 구분하고 버리지 않을 것은 다시 냉동실에 차곡차곡 정리를 하면서 칸을 비워냈다. 게다가 꽁꽁 얼어붙은 음식들은 어찌나 무겁던지…. 얼어붙은 음식은 그들을 포장한 겹겹의 비닐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떡이나 과일 같은 것들은 그럭저럭 버리기가 용이했는데 만두나 튀김 같은 것은 손에 기름이 잔뜩 묻어 미끄럽고 불쾌했다. 다행히 쓰레기 처리장 바로 옆에는 외부 화장실이 있어서, 거기서 손을 씻을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나는, 정말 손에 온갖 양념과 기름을 묻힌 채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쓰레기까지 처리한 뒤 손을 씻고 나와 잠시 나무 그늘 아래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숨을 돌렸다. 숨만 쉬고 앉아 있어도 푹푹 찌는 더위에 숨이 막혔다. 마치 누가 나를 꽈악 안고 있는 것 마냥, 짜부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때, 바로 옆에 주차되어 있던 탑차 밑, 아주 작고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것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달팽이 껍질인가하고 들여다보니, 매미 유충의 등껍질이었다. 문득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매미 유충의 등껍질을 본 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불현듯 초등학생 시절, 매미는 유충으로 5년 정도의 세월을 산 뒤 겨우 성충이 되는데 불과 여름 한 철을 채 나지 못하고 매미로서의 삶을 마감한다고 배운 것이 생각났다. 전체 인생의 5%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위해 매미는 95% 이상의 시간을 땅 속에서 유충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매미 유충의 등껍질은 정수리부터 꼬리 끝까지 일정한 직전을 남기고 갈라져 있었다. 어둡고 긴 세월을 버텨낸 개체에게만 허락된 아픔이었을 것이다. 등껍질이 찢어지는 아픔까지 견뎌내면 비로소, 매미는 유충에서 성충으로 우화한다. 무한대처럼 느껴졌을 5년의 세월, 끝없는 어둠과 인내를 지나 마침내 등껍질을 가르던 그 순간, 성충이 되기 직전의 매미는 무슨 기분이었을까.


내가 본 것은 유충으로서의 유언. 한 개체의 마지막이 주는 무게감은 감히 내가 엿볼 수조차 없는 경외심, 그 자체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3개월도 채 안 되는 삶을 위해 한 치 의심도, 주저함도 없이 살아온 그의 인생에 경의를 느꼈다. 그것은 마치 1년 중 단 2주 간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근 50주를 숨죽이며 버텨낸 벚꽃, 단 하루를 위해 364일을 인내하는 견우와 직녀의 삶과 같이 엄숙한 것이다. 어찌 보면 찰나에 가까운 절정의 순간을 위해 삶의 대부분을 인내하는 매미. 그의 삶을 안쓰럽다 말하는 것은 어쩌면 모욕이 아닐까. 오히려 그의 삶은 그토록 극단적이면서, 맹목적이기에 숭고하고 또 감동적이다.


집에 돌아와 냉동실을 열어보니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보기 좋다. 그리고 아까 전에 넣어둔 얼음 트레이의 물들은 아직 채 얼지 못한 채 뽀골뽀골 숨죽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아이들도 얼음이 될 것이다. 그 얼음들은 내게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나의 입 안 가득, 자신을 증명할 것이다. 기나긴 혹한(酷寒), 인고의 시간으로써 자신의 ‘빙생(氷生)’을 증명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한낱 얼음의 삶도 무시할 수 없겠다고, 별 게 아닌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가만히 눈을 감고 몇 시간 뒤를 상상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 마신 뒤 남은 얼음을 하나하나 아주 소중하게, 천천히 입 안에서 녹여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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