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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May 05. 2021

나는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초등학생 때였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나는 “인생은 허무한 것이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게 은근 사춘기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반 친구들 몇과 어울려 “허무교”라는 종교를 만들고, 그곳의 교주가 되기에 이른다.



말뜻도 모르고 되뇌던 말이었겠지만 어쩐지 요즘은 다시 그 말을 가끔 생각하곤 한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대학을 가고, 시험을 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무수한 변수에 혼란스럽던 청년기를 지나 중장년층이 된 나는 안정을 찾았고, 안정된 삶은 편리하지만 권태롭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일상이 그저 무료하고 지루하다. 근데 정말 무서운 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는 것. 변수가 없는 삶에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 지겹고 지루하다. 그리고 두렵다, 매우.



인스타그램, sagaksagak_writing 행시 챌린지에서 발췌. (2021. 05. 05. 행시 _ 아무것도 아니야)





무료함에 둘러본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가득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것 같지. 나는 오늘 뭐 했지… 이런 생각들 가운데 문득, ‘이 사람들은 이렇게 행복하려고 오늘 하루 노력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요리를 하고, 경치 좋은 곳으로 나들이를 가 힐링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오늘치 행복, 오늘치 사진을 기록하고 남기기 위해 오늘 하루 뭐라도 했겠구나.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함부로 내가 재단할 수 없는 행복이구나.      



무의식적으로 나는 행복이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마치 동화처럼. 그러나 살아보니 행복이란 삶의 중간중간 _정말 감사하게도_ 찾아오기도 하지만 스스로 찾아나서야 할 때가 많았다. 물론 그 과정이 험난하고, 비루해 행복하지 않다 느껴질 때가 많았을지라도 목적지에 도착한 나의 양손엔 분명 행복이 쥐여 있었다.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 정해 놓은 목적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행복은 거저 쥐어지는 것이 아닌데… 고사(古事) 중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농부가 우연히 나무 둥치에 부딪혀 죽은 토끼를 보고는, ‘매일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을 바에야, 하루에 한 마리씩이라도 토끼를 기다렸다 먹고 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겠는데?’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매일매일 짓던 농사도 내팽개치고는 나무 둥치 뒤에서 토끼가 달려와 부딪히기만을 기다렸다는 이야기다. 수주대토(守株待兎). 지금 내 꼴이 딱 고사 속 농부의 모습이다. 나무 둥치 뒤에 숨어, 행복이라는 토끼가 달려들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농부의 모습이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데, 글쎄. 나는 남들의 행복을 보면서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부럽고, 질투가 나서, 나도 꼭 저 사람들처럼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바라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비교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건전하고, 건강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자격지심이든, 분노든 훌륭한 동력원이 된다. 그래봤자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고 애쓰지 말라고 한다 해도, 나는 해 보기로 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조금씩만 더 노력해 보기로 했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우울감을 떨쳐내고, 내일은 오늘보다 약간만이라도 더, 행복해지자고 나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 인스타그램 계정:

http://instagram.com/sagaksagak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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