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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Oct 13. 2021

한 칸 한 칸 행복의 기초 쌓기

_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니라.

▲ 위 이미지는 Google Image에서 검색 차용하였습니다. :)









나는 무엇이든 배울 때는 완전 기초 단계부터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왕 배우는 거 제대로 배워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해력이 부족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무언갈 이해하는 속도가 꽤 느린 편이었던 나는, 천천히 남들보다 시간을 들여 스스로 납득이 될 때까지 기초를 반복‧숙달하곤 했다. 이해력은 좀 부족해도 다행히 응용력은 좋은 편이어서 한 번 이해한 기본 원리를 여기저기 적용하는 일은 자신 있었다. 조금 늦더라도 곧 따라잡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천천히, 이해가 될 때까지 차근차근 공부했다. 그리고 공부를 해나가면서, 지식이란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점점 기초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낀 이후로는 더욱 기초에 집중했고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눈에는 그것이 답답해 보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불필요한 내용이 섞여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 왜 그렇게 기초에 집착하냐는 식의 질문을 여럿 받았다. 당장의 효율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초가 탄탄해야 흔들림 없는 배움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요령, 효율, 스킬은 그 다음이다. 부실한 기초 위에 쌓아 올린 것들은 아무리 화려한 것이라 할지라도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 기초가 튼튼한 집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어떤 대상을 이해하고 세계에 접근해 온 방식이다.








최근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한데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상황에 놓였다. 어쩌면 답이 없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일지도 모르겠고. 말하자니 바보 같아 혼자서만 간직해 온 나의 고민은…,



나는 행복하고 싶다.



늘 행복하고 싶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더욱 간절하다. 유독 간절한 것을 보면 지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모양인데, 실제로 그렇게 느낀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온통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 진심으로 행복하고 싶다.


21. 10. 12. ㄱ띠의 일기 중









행복해지는 방법은 뭘까. 여러 방면으로 찾아보고, 책도 읽어보지만 다 뻔한 이야기뿐, 마음에 와닿는 것은 없다. 몰입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라. 여행을 떠나라. 관계를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목표를 세워라. 나만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라… 다양한 행복 찾기 방법이 있었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러한 것들은 어느 정도 행복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 존재들이나 할 수 있는 말들 같았다. 기본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경지… 걸음마도 채 떼지 못한 아이에게 앞구르기를 시키는 격이랄까. 겸손한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그렇다면 행복의 기초는 무엇일까. 며칠 밤낮으로 고민한 행복의 기초를 조심스레 꺼내 본다.


예전에 근무한 적이 있던 학원의 원장 선생님은 나름대로 삶의 철학을 가진 존경할 만한 분이었다. 매주 수요일 수업 1시간 전에는 늘 강사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주최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여러분,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은 열에 셋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불행한 순간은 얼마나 될까요?” 여기저기서 “일곱”이란 답이 들려왔는데, 원장 선생님은 불행한 순간도 똑같이 셋 정도 됩니다. 나머지 넷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순간이고요.”라고 말했다. 나머지 넷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감동적인 연설로 원장 선생님은 그날의 회의를 마쳤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는 대부분 삼할의 행복을 제외한 나머지 칠할을 불행한 날로 기억한다. 나조차도 나머지 일곱은 불행한 순간이라 여겨 의심치 않았으니까. 현실의 소인배들, 현실 속의 범인(凡人)들은 원장 선생님의 명언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바쁘고, 또 고됐다. 그나마 삼할의 행복조차도 사실은 불행이 아닐까 의심하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초 첫 번째. 인생이 그다지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닥 행복하지 않은 나날 중 간혹 찾아오는 30%의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면 일단 인생이 별로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대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고, 절망이 있어야 희망이 가치를 가지듯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깨끗이 인정했을 때, 우리는 종종 찾아오는 행복의 가치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위 이미지는 Google Image에서 검색 차용하였습니다. :)










우리가 행복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행복의 순간은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그저 행복한 순간이라고 우리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을 뿐,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순간들이 대부분이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농구 시합을 펼쳤을 때. 운 좋게 우리 팀이 이겨서 공짜 음료수를 얻어먹을 때. 시험에서 평소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 고생했다며 말없이 등을 쓸어주는 친구를 만났을 때. 저녁 차리기 귀찮았는데 와이프의 메시지, “오늘 배떡 먹을래?” 오늘따라 유난히 떡볶이가 입에 맞을 때. 함께 나눈 대화가 즐거웠을 때. 산책길 선선한 밤공기에 성큼 다가온 가을을 느꼈을 때. 사랑하는 강아지가 나를 마중나올 때. 마침 흘러나온 노래가 좋아하는 노래일 때. 하던 일이 잘 마무리되었을 때.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기를 쓸 때. 대부분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초 두 번째. 행복은 사실 별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행복은 우리의 인생 곳곳에 숨어있고, 도처에 널린 행복에는 주인이 없다. 먼저 그것을 발견하고 냉큼 주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행복의 임자다. 대단한 행운을 기다리지 말고, 삶 구석구석 묻어 있는 행복을 주워 담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두 번째 비결이다.



_의왕시 왕송호수 (20.07.18.)








논리 없는 외침은 공허하다. 초석이 없는 집은 부실하다.

기초가 부족한 나의 글은 아마 뻔한 소리나 늘어놓는 수많은 글귀와 같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내 스스로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행복의 초심자인 나는 언제고 다시 내 삶을 불행으로 규정짓고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아갈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늘 이 글을 썼음을 떠올리고 싶다. 내가 치열하게 행복에 대해 고민했음을. 열렬히 고민해 얻은 답을 거칠게나마 이곳에 기록해두었음을. 모든 것이 그러하듯 탐구의 끝은 그 기초와 맞닿아 있음을. 기초를 잃은 행복론이 방향을 잃고 휘청거릴 때 또 한 번, 이 글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이 자리에 나만의 행복의 기초를 세워본다. :)




_with 사각사각 글쓰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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