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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Jan 18. 2022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는 진실이 하나 있다

_기역띠의 일기(2022. 01. 12.)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는 진실이 하나 있다.

아침에 일어나 귀찮더라도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면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대개는 출근을 해야 하니, 이 당연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살다가도 방학만 되면 새삼 깨닫곤 한다. 방학은 학생과 교사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이나, 사람을 지나치게 게으르게 만든다. 출근의 압박이 없다 보니 무한정 빈둥대고, 빈둥대다 가끔 죄책감이 들면 책을 들여다보거나 청소기를 돌리기도 하지만, 이런 것은 진정한 일과의 시작이 아니다. 그냥 빈둥대는 와중에 소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정도?


아무튼 본격적으로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물 한 잔 마시고,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해야 한다. 그것은 그냥 샤워가 아니다. 본격적인 일과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의식이다(비슷한 종류의 의식으로는 침구 정리하기, 찬바람 쐬고 들어오기, 간단한 체조나 스트레칭 하기 등이 있으나, 결국 샤워가 가장 대표적인 의식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실천하지 못해 허무하게 보낸 하루가 연병장 두 바퀴 반 정도 된다. 오히려 두 바퀴 반이란 수치가 모자란 감이 있다. 이번 방학도 벌써 유야무야 하는 동안 열흘이나 지났다! 그래도 이번 주는 아직 수요일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셈이다. 이번 주라도 알차게 살려내야겠다.




불현듯 얼마 전 사 두었던 딸기가 생각이 나 먹으려고 꺼내 보니, 상해 있었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도, 과일은 쉬이 상하곤 한다. 검붉게 물러 버린 녀석도 있고, 하얗게 곰팡이가 핀 녀석도 있었다. 아직은 제철이 아니라서 비싸게 주고 사 온 녀석들이라 더 맘이 상했다. 그 특유의 향긋한 향은 늘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있었으나, 오늘의 녀석들은 특유의 빨간 생명력을 모두 잃고 유명을 달리했다.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가지런히 보관해 둔 수박도 오늘 내일 하는 중이었다. 아침 식사는 반강제적으로 수박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딸기도, 수박도 사랑하는 니은띠가 먹고 싶대서 설산을 헤치고 산수유 열매를 따 온 아버지의 마음으로 어렵게 공수해 온 것들이라 더욱 마음이 아팠다. 제철도 아닌데 꽤 맛이 있어서 니은띠도, 나도 맛있게 먹었는데 끝까지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고 보면 과일도, 사람도 다 적당한 때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냉동시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때그때 조금씩 사다가 바로바로 먹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오래 숙성해야 제맛이 나는 대기만성형 인간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그 끼를 감출 수 없는 낭중지추형 인간도 있게 마련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적당한 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 상한 음식을 입에 댈 수는 없는 법이니까.


너무 아끼지도 말고, 너무 조급해하지도 말자.

나에게 적당한 시기가 찾아왔을 때, 나를 가장 멋들어지게 내보일 수 있게. :)


...그런데 이미 너무 늦어 버린 것은 아니겠지?

괜찮아. 나는 대기만성형 인간일 거야. :D


자신감!! 아자아자!!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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