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에 일어나 고단한 몸을 이끌고 출근. 출근하면 하루 종일 복작복작거리며 업무에 매진한다. 커피 한 잔 마실 새도 없이 바쁜 하루, 또 하루.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면 잠시 동안 마음이 가벼워지지만, 뚫릴 줄 모르는 교통 체증은 잠깐 가벼워진 마음을 도로 무겁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 이제 좀 쉴까 했더니 산더미처럼 쌓인 살림살이들. 분주히 처리하고 나면 쏟아지듯 소파에 쓰러져 꾸벅꾸벅 졸다 하루가 간다.
지쳤다, 몸도 마음도.
새벽에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것도.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받는 것도. 퇴근길 교통 체증도, 집에 오면 널려 있는 살림 거리도 다, 완전히 지쳐 버렸다. 특히 살림. 일터에서의 고단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퇴근 후 살림살이는 워라밸을 무너뜨리는 주된 요인이다. 퇴근 후의 삶이 그렇게나 중요하다는데 밀려 있는 살림 더미를 처리하다 보면 퇴근 이후 삶…?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책도 좀 읽고, 글도 좀 쓰고, 공부도 좀 하고, 운동도 좀 하고, 게임도 좀 하고, 취미 생활도 좀 하고, 저글링도 좀 하고(…?), 좀 놀고 싶은데 도무지 이놈의 살림은 구석구석 빈틈이 없다. 돌아서면 더러워져 있고, 돌아서면 또 다른 게 생각나니 정말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혹시 살림이 동사 '살리다'에서 파생된 명사라면 이것은 정말 잘못된 명명(命名)이다.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니, '죽임'이 더 어울린다. 아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면서 우리를 괴롭힌다.
맞벌이 부부에게 살림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글을 적어볼까.
하월곡 분기점의 개미허리 같은 병목을 어찌저찌 뚫어내고 집에 도착. 중문을 들어서는 순간 배변판 너머 코코띠의 노오란 오줌이 보인다. 주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코띠는 자기를 어서 안으라고 콩콩거리며 성화다. 배변판과 주변을 정리하고 소파에 앉는다. 바라다보이는 거실 한복판에는 마치 서부 영화의 건초더미처럼 데굴데굴 먼지들이 굴러다니고, 정체불명의 얼룩과 무수한 발자국이 찍혀 있다. 정리되어 있지 않은 주방, 건조기 속 빨래…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 한 번 하고, 그릇 정리하고, 빨래 개고, 세탁기 돌리고, 내친김에 분리수거 정리까지 마치고 나면 한두 시간은 말 그대로 ‘순삭’이다. 라면으로 늦은 저녁을 대충 때우고, 다시 소파. 꾸벅꾸벅 졸면서 TV를 보다 보면 어느새 12시. ‘오늘 진짜 뭐 했지?’ 자책과 걱정을 한가득 안고서 무거운 맘으로 터덜터덜 잠자리에 든다.
_꽉 막힌 도로 상황.. 병목 현상이 심각하다.
혹시, 니은띠가 집안일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을 것 같아 덧붙이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니은띠는 예민하고 변덕스런 남편에게 맞춰 함께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주는 좋은 아내다. 다만 문제는 맞벌이 부부에게 살림살이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것. 힘든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두 사람 중 누군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고단함은 배가 된다. 퇴근 시간도 이르고, 성격 급한 나는 기다림의 미덕을 발휘하지 못하고 늘 눈에 보이는 대로 일거리를 해치워 버리고야 마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왜 나만?" 하는 생각과 함께, 함께 생활하는 반려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곤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무도 나에게 청소해라, 빨래해라 시킨 적 없었다. 그저 내 눈에 지저분한 게 보이니까, 내 눈에 쌓여 있는 빨래들이 보이니까,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꼼꼼하게 살림을 챙겼을 뿐이었다. 결국은 내가 좋자고 스스로 선택한 행동들인데, 조금씩 버거워지니까 말도 안 되는 억하심정으로 주변 사람에게 화풀이를 했던 셈이다. 재정비가 필요했다. 살림의 양도, 마음가짐도. 무엇보다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했다.
살림이 괴로운 이유는 그 범위가 생활 전반에 걸쳐 있고 매일매일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씩 하나씩 처리하면 대단할 것도 없는 살림살이인데, 성격 급한 나는 모든 걸 한 번에 끝내려고 하다 보니 점점 지쳐갔던 것 같다. 매일 돌볼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정하고, 어차피 오늘 못 한 살림은 내일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힐난하거나 안타까워하는 빈도를 줄여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저녁 식사를 차려 먹기로 했다. 다이어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 나는 고단함에 밀려 한 끼 먹는 저녁도 라면 따위의 인스턴트식품으로 대충 때워 버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방편으로, 나는 매일 저녁 나의 끼니를 직접 차려 먹기로 다짐했다.
저녁을 차려 먹고부터는 이전보다 좀 더 퇴근 시간이 좋아졌다. 퇴근길에 동네 마트에 들러 오늘 먹을 식재료를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퇴근 15분 전쯤부터 하던 업무를 갈무리하고 오늘 먹을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필요한 식재료를 샀다.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에 출퇴근 시 지하철을 애용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교통 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줄어들게 되었다. 이동하는 동안에는 미뤄두었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자투리 시간까지 살뜰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얻은 점이 많았다.
직접 준비한 식재료로 서툴지만 정성껏 만든 저녁은 영양가가 높고, 제법 맛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먹을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만족감과 성취감은 크게 기쁠 일도 슬플 일도 없는 인생에 소소한 재미를 더해주었다.
서로 다른 퇴근 시간으로 인해 혼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일이 많았지만, 니은띠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은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 날은 함께 먹을 만큼의 식사를 함께 준비하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러면서 부부간의 대화도 많이 나눌 수 있었고, 두 사람의 사이도 더욱 가까워졌다.
최근 차려 먹은 저녁 메뉴. 좌측 상단부터 볶음김치덮밥, 모둠 쌈밥+강된장, 낙지덮밥, 두부조림 순이다.
식사를 마치면 소화도 시킬 켬 코코띠와 산책을 나갔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산책을 시켜주지 못해 코코띠에게는 늘 미안한 맘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일 저녁을 차려 먹기로 결심하고부터는 산책을 매일매일 시켜주게 되었다. 매일 산책을 다니고부터 코코띠는 훨씬 편하게 볼일을 보게 되었고, 배변 스트레스가 해소되자 못난 주인을 향한 날 선 반응도 한결 나아졌다.
Before → After
식사 후 가벼운 산책은 오히려 식곤증을 해결해 주었다. 산책 후 돌아와 씻고 나서는 차분히 책도 읽고 글도 쓰게 되었다. 멍하니 TV를 켜 놓은 채 꾸벅꾸벅 흘려보낸 시간과는 달리 지금은 훨씬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시간을 쌓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어떨 때 삶은 아주 작은 변화로부터 큰 전환의 계기를 맞기도 한다.
퇴근 이후 무너지기 일쑤였던 일상이, 쌀을 씻고, 밥을 하고, 소박한 식사를 차려 먹는 일 하나로부터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이것이 큰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늘 상대에 대한 미움과 삶의 고단함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이제는 조금 행복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 아닐까.
맞벌이 부부로 살면서 살림까지 도맡아 해야만 하는 삶이 너무 힘들고 버거워 마음 한켠은 늘 우울감과 자기 연민으로 가득했었다. 이런 감정들은 결국 흘러넘쳐 나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쉽게 남의 탓을 하거나 쉽게 서운해했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내가 너무 밉고 별로여서 이미 우울한 마음에 한 스푼 다시 우울함을 더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퇴근길 풍경.. 역에서 집까지는 걸어 다닌다. :)
이제 나는 더이상 내가 밉다거나 싫지 않다. 오늘 해야 할 살림 거리들 때문에 더이상 괴롭거나 버겁지도 않다. 그렇게 중요하다는 퇴근 이후의 삶을, 나는 꽤 알차게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막연히 기다려지던 어제의 퇴근과 달리 나는 구체적인 이유와 함께 오늘의 퇴근이 기다려진다. 오늘은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대파를 살 것이고, 지난번에 아쉬움을 남겼던 알리오올리오와 달걀볶음밥을 다시 한 번 만들어 볼 생각이다.
아팠던 기억도 좋았던 기억도 소박하고 서툴지만 열심히 차린 식사와 함께 꼭꼭 씹어 삼킨다.
서툰 글씨로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나는 매일매일 정성껏 저녁을 차려 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