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 보면 관계란 나에게 늘 초미(焦眉)의 관심사였다. 초연한 척했지만 사실 그랬다. 친구들이 내 말에 웃어 주거나 관심을 가져 주면 기분이 좋았고, 또래 여자아이에게 고백을 받는다든지 선생님들께 칭찬을 들으면 코끝이 빨개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영영 멀어진 친구도 생기고, 한번쯤은, OO이가 너 뒷담 까고 다니더라, 라는 말도 들어보고 했을 즈음에 나는 내가 더 이상 관계를 갈구하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주말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진행하기로 한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동료의 의견을 구해야 할 일이 있어 대화를 하던 중, 상대방의 예민한 반응에 꽤나 당황했던 순간이 있었다. 내 딴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일단락을 지어 놓자는 생각으로 말을 꺼낸 것이었는데, 상대는 나의 말을 재촉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퇴근길 방향이 같아 평소 많은 대화를 나누던 동료가 있었다. 둘도 없이 친한 사이임에도, 그날따라 의견이 달라지자, 날을 세우던 모습도 생각난다. 토닥토닥 달래가며 대화를 마무리 지으면서, 성격 좋기로 소문난 그녀가 이처럼 예민해진 걸 보니 여름이 깊어지긴 했나 보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상대의 예민한 반응에 다소 맘이 쓰이고,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큰 어른은 되지 못한 모양이다. 매사 초연하고 싶은데, 주변 사정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뿌리를 단단히 내린 교목(喬木)은 되지 못한 모양이다.
무관심이 답인가 싶다가도, 그건 또 인간적이지 못한 것 같아 싫다. 어쩌자는 거냐고, 갈팡질팡하다 그 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아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인생이란 게 본질적으로 애매한 것이 아닐까.애매한 가운데 정답처럼 보이는 오답을 골라 허우적거리는 것이 인생이고, 두리번 두리번거리다 어느 순간 한 곳을 응시하며 살아가는 것이 또 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래, 좀 흔들리면 어떤가. 도종환 시인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하고 읊지 않으셨던가. 뿌리가 깊숙이 박혀 있지 않으면 또 어떤가. 부딪치고 흔들리더라도, 그저 묵묵히 걸어갈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