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수도권 소도시로, 흘러가는 대로 사는 인생.

by 은비령

나는 현재 수도권의 유명하지 않은(?) 중소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강남이나 홍대, 상수, 압구정처럼 핫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감당가능한 집값과 초록초록한 녹색 자연경관이 여유로운 동네라서 거주하기 편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 집주소를 말하면 그 사람의 경제적 수준이 짐작됐고,

어느 지역의 어느 단지에 산다고 하면 부러움을 사곤했다.

사실, 우주적 관점에서 내려다본다면,

2023년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 어느 동, 어느 아파트 단지, 로얄층에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다 같은 시대를 살아간 비슷한 세대를 공유한 인간들일 뿐일 텐데.


그럼에도 이혼 후, 9년 동안 5번의 이사를 다녀본 사람의 관점에서 말해보자면,

거주적 안정성은 삶의 안정성과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불안정하게 이사를 다섯 번이나 다닐 때마다, 내 삶은 방향성을 잃은 작은 돛단배처럼 흔들렸다.

한 공간에 뿌리를 내려 터를 잡고 살아간다는 것이 사람의 본능인가보다.

그래서 사람이 두 다리로 직립보행하고 서 있는 모양이 마치 나무가 산에 뿌리를 내린 모습과도 흡사한 것일까.


그간 내가 거쳐온 지역을 말해보자면,

일단 서울에서는 동작구, 서초구, 양천구, 성북구..정도였다.

20대에서 30대 초반 시절 여기저기 점프도 많이했다. 주로 내가 공부하는 대학이 있는 지역이었는데,

서울에 거주할 때는 5분정도 걸어가면 트리플 역세권 정도는 기본이었고,

유명 대학이나 각종 프렌차이즈 상업 건물들, 극장 등 문화시설, 대형 공원 등이 지척에 있었다.

그 시절에는 서울을 벗어난다는 것에 대한 엄청난 거부감, 두려움이 밀려와서,

대학 신입생부터 시작된 서울 살이는 결혼을 해서 신혼집을 얻을 때까지 지속됐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이동 범주가 줄어들고, 무엇보다 쾌적함과 안전함이 거주의 제일 요소로 간주되기 시작했었다.

트리플 역세권 조건은 있으면 좋겠지만, 유모차와 아기띠를 가지고 지하철 타기란 거의 곡예에 가까웠기에

넓은 주차장을 보유한 교외의 집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이가 유아기일 때는, 학군 따위는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맛있는 브런치 식당이나, 아이를 데리고 피크닉을 갈 작은 공원 정도만 있어도 족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앞두게 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양 마음이 조급해졌다.

무언가 최상의 교육환경이 구비된 안정적인 곳에 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기시작했다.

한 발자국 나아가, 이왕이면 신축 아파트에 국민 평수라는 30평대는 되어야 할 것 같았고,

초등 워킹맘으로서 학원 픽업을 하려면, 내 직장과도 거리가 가까워야 했다.


그렇게 지금 사는 지역으로 오게 되었다.

코로나 직전, 부동산 버블 시작 즈음 왔으니, 불과 만 3년 정도 지났고, 아이는 어느 정도 학교에 혼자 다닐 수 있을 만큼 동네에 적응을 해갔다.

초등 학부모로 지내다보니, 초등 교과서에는 '우리 동네, 우리 가족' 이런 주제의 수업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우리 동네의 편의성에 대해 아이들이 네이버 지도의 거리뷰까지 살펴보며 검색한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만약, 부모의 능력 부족으로 아이가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없게 된다면 아이는 그 수업 시간에 얼마나 수치심을 느껴야할까.


사실, 지금 사는 이 집에서 영원히 살 줄 알고 이사를 왔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빠르면 올해 안에, 늦어도 24년 봄 전에는 지금 사는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 동안 브런치에 글도 못 쓸 만큼,

불안정한 거주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었다.

어른만 있다면 어디는 가서 살겠지만, 아이를 동반한 채 이사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다니던 정든 학원들과, 학교 방과후 프로그램들, 놀이터에서 만나는 동네 친구들과, 가끔 가던 동네 문구점에 단골 미용실까지, 모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부동산에서는 자녀가 있는 고객이 오면, 초,중,고가 모두 가깝다는 내용을 가장 크게 어필한다.

내년 이맘때쯤, 나와 아이는 어디에서 또 뿌리를 내리고 잘 정착하고 있을까?

이번 집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을 때,

내 머리에 문득 스친 생각은, 그럴 바에 아예 외국으로 이사를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드 넓은 캐나다의 구글 맵을 켜놓고, 수많은 주의 학교와 공원, 문화시설 등을 검색하면서 알게 된 진실은, 세상은 우리가 선택하여 살기에는 너무나 넓고 다양한 대안이 존재하며,

그저 이 지역, 이 아파트에만 집착하기에는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동네가 참으로 많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제 이 불안정한 이주를 즐기려한다.

아이의 학교가 바뀐다는 사실은 큰 변화에 속하지만,

그러기에 더 넓은 시야를 갖게되고,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인생"
내가 좋아하는 구데타마의 명언이다.
선택에 결정장애가 있으니, 누가 좀 뽑기라도 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때로 인생의 아주 큰 결정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우연히 시작되니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코야키와 사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