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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Dec 02. 2023

드라이빙의 정체성

좋은 차를 고르는 기준에 대하여 

어제, 내 차를 팔아버렸다.

차량 매도가 예정된 일은 아니었다. 

살다보니 어찌어찌한 연유로 자산을 처분하게 되는 일도 생기곤 하더라.

차와 함께한 거리는 불과 28760km였다.


그 차와 함께 배를 타고 제주도도 다녀왔고,

인천 영종대교도 몇 번쯤 건넜으며,

중부지방의 청주 호숫가와 단양과 같은 아름다운 지역 나들이도 함께 했으며,

매일을 내 발이 되어 출퇴근을 편히 할 수 있었고,

코로나 시절 아이와 안전하고 따뜻하게 서울 나들이를 다녀오는 것도 가능했다.

마트에서 사온 무거운 생필품을 나르는 데도 도움을 받았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바깥의 비바람을 막아주며

집 못지않은 피난처 역할을 해 주었다. 

마음이 제 자리를 못 찾는 날에는 

바람처럼 나를 멀리 데려다주었으며 

어디든 두려움 없이 가볼 수 있는 자신감도 선사해주었던 내 차.


단순히 이동수단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정이 많이 들었었나보다.

막상 차를 보내고 나니, 정든 친구와 헤어지듯 아쉬운 마음이 든다. 


보통 사람들은 

차량을 짧게는 2~3년, 길게는 7~10년까지 오랜 기간을 함께 하며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곤 한다. 


수입 제조사들의 경우

보증 기간을 대부분 5년으로 해주는데, 그 정도의 기간 만큼은 차량이 잔고장없이 잘 다닐 수 있는

나름의 차량들 '젊고 건강한 청년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차의 나이는 만 2.5세. 청년기의 한창을 달릴 그 녀석을 좋은 분들께 보내고 오는 길.

소중한 물건과의 헤어짐에도 애도 기간이 필요한가보다.


다음 차에 대한 선택 또한 어려웠다.

그저 연비가 좋고, 디자인이 예쁘거나, 다양한 편의옵션이 많거나, 짐을 많이 적재할 수 있다거나

그런 편리함과 실용성을 넘어서서,

세상에 너무 좋은 차들이 많아 결정장애가 온 것이다. 


내 경우 어느덧 20여년 가까이 운전 경력이 쌓여서, 

디젤, 가솔린, 하이브리드를 모두 몰아봤는데 제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

디젤은 첫 시동에서 약간의 진동이 있지만, 부스팅되는 시간을 지나고나면 힘이 있게 잘 달리고, 

연비가 매우 좋았다. 그러나 특유의 매연과 오래된 디젤차의 수리는 다소간의 부담이 있었다.

가솔린은 무난한 힘과 엔진 크기에 따른 가속력, 관리의 편안함. 그저 무난무난한 차였던 것 같다.

하이브리드의 경우, 정숙성 면에서는 으뜸이고 연비도 좋은 차였다. 

정속 주행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가장 잘 맞았던 차였는데, 

가끔 드라이브를 하고 싶을 때 의외로 잘 안나간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무언가 모범생 같은 느낌이랄까.

기존에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차를 몰아보지도 않고 구매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드라이빙의 느낌'을 제대로 경험해보고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운 차량의 선택을 위해 다양한 차량을 시승해보았다.


중소형 하이브리드 엔진(국산), 준중형 가솔린 (수입사), 중형 디젤, 가솔린 suv, 해치백(수입)차까지.

뭐든지 '거거익선'이라고 큰 것들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이번에는 작고 컴팩트하면서 고성능인 차량이 타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엔진 용량이 큰 차들이 후보 범주에 들어오더라. 

차의 외형적 크기가 작다고 엔진이 작은 것은 아니더라. 

차량에 대해 이렇게 몰랐던 것일까.

"2000cc의 차 중에 어느 차가 제일 무난할까요?"라고 차량회사 직원분께 여쭤보니,

잠시 말문을 잇지 못하시면서 "우리 나라에 2000cc차량들이 종류가 가장 많아요."하셨다.


일단 여기까지. 

좋은 엔진을 가진 작고 예쁜 차를 고르는 중이다. 

신발 하나를 고르는 데도 많은 고민이 따를 텐데.

앞으로 나의 40대를 함께 해줄 고마운 차량을 만나기 위해,

조금 더 깊고 신중하게 고민해 봐야할 듯싶다. 

당분간 오랜만에 '뚜벅이'로 걷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으니, 

삶의 방식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싶다.


허전함과 기대감 속에서 

잠시 얻는 자유로운 방황을 만끽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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