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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Sep 07. 2024

모닥불 타는 밤

가을이 성큼

발 뻗은 어느 밤


불놀이에 취해본다.

합법적인 불 지르기.

모닥불 놀이.


온갖 잡동사니들을 모아넣고

불쏘시개로 뒤집어가며


하찮고 시덥잖던 온갖 쭉정이들이

재로 변해

무로 돌아가는

성스러운 점화 과정을

지켜본다


끝내는

불똥으로 변해

하나둘 흙으로 돌아간다.


아이는

불꽃이 저물어가는 게 못내 아쉬운지

꼭 자기마냥

어여쁘고 가녀린 것들을 주워와

재잘거린다.


"나뭇가지가 인사해요!

엄마!

나무가 몸 흔들며 춤을 췄어요!"


"재밌어요"


타들어가

쪼그라드는

작은 나뭇가지들의 최후의 몸부림이

아이의 눈에는

인사로도 보이고

춤으로도 비친다.


비로소

환하게 불꽃으로

다시 태어난

하찮은 것들의

재생이,

헛되지 않게 느껴진다.


서늘한 가을 밤.

모닥불 타들어가는 소리

춤추는 나뭇가지들의

따스한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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