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의 마지막날, 어두운 방안, 퀸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이불킥하고 무작정 바다 근처로 달려왔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듦에 따라, 꿈의 크기도 작아지는 것인지, 감당가능한 체력의 범위 만큼만 움직이게 되고, 무작정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게 점점 두렵기만 하다.
예전같았으면 바닷가 캠핑장도 충동적으로 자주 왔었는데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약한 마음이 든다. 묵직해진 체중 만큼이나 발걸음 내딛는게 어렵고, 새로운 장소를 겁없이 찾아다니던 열정도 사라져간다.
양양의 낙산 해변.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동해바다다.
그 바닷가에서 봄바다의 잔잔함을 잠깐 바라보다가
유명하다는 감자옹심이도 먹어보고,
그 주변에 있는 소품샵 겸 엔틱 카페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카페 이름은 소박하게도 '마음이 동해'란다.
영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한다.
"엄마가 준 것 말고는 새로운 것을 절대 시도하지 말아라."
고개가 끄덕여진다.
굳이 엄마까지 아니더라도
40 중반이 가까워오니, 과거의 나에게 사로잡히게 된다. 그간의 경험 상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커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열린 마음이 설 자리가 작아진다.
음료 하나 선택하는 데도 그렇다.
시그니처라는 음료를 제끼고
늘 먹던, 좋아하던 코코넛 라떼를 주문한다.
그러다 소품들 속에 조화롭게 누워있는 가벼운 에세이류의 책들을 들춰본다.
그 책들을 무심코 넘겨보다가
가슴을 탁 치는 문구를 만났다.
--------
뭔가를 얻을 것 같았던 시절도 있었고 자만하다 다시 그 뭔가를 잃기도 했다.
난 예전보다 더 가진 게 없었고 더이상 잃을 것도 없었다. (런던 일러스트북스, 박상희)
이 매트릭스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스스로 달래면서 멈춰버리는 건 아닐까.
-----------------
자가당착에 빠져 지나온 길이 최선이었다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는 건 아니었나 싶다.
두 번째 삶을 찾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왜 고갱은 가족마저 버리고 타히티로 떠났을까.
온 생을 걸고 내 한계치를 시험해보고 싶다.
커피 한 잔을 내려도 온 힘을 모으듯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