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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속 지혜

병원에서 니체를 만나다.

by 은비령

다소(?) 심한 폐렴으로 병원에 일주일째 입원 중이다.


폐렴에 대해서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은, 2-3년 전부터 대유행하던 영유아나 청소년이 많이 걸린다는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란 녀석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또 최근에는 전세계인이 사랑해 마지않던, 프란체스코 교황님께서 폐렴 후유증으로 영면하셨다는 사실. 또는 폐렴은 그저 심한 감기 정도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인데, 왜 한국인 사망 원인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는 걸까... 등등의 막연한 궁금증.


사실 막상 이 질환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아픔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비유하자면 사랑니를 발치한 뒤의 통증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날들?

폐 세포에 침투된 몹쓸 바이러스들, 염증세포들이 내 몸의 면역체계들과 사투를 벌이느라 고열이 미친듯이 지속된다는 점?(39도 가까운 열이 5일이 났다.)

그리고 그 고열과 높아진 염증수치로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무력해지며, 숨 쉬기가 힘들어진다는 점?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밀려오는 쇳소리나는 기침 때문에 잠을 설치다가, 항생제 3종 세트의 위력에 몸이 나른해져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다는 점?

열만 떨어지면 바랄 게 없겠다 싶다가, 갑자기 내 육체가 내 마음대로 안되고 조금 산책하고 싶어 병원 복도를 두 바퀴 돌고오면 기력이 소진해 다시 시체놀이를 해야한다는 점?

이런 날들이 며칠 째 지속되다가 이게 회복이 안 되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다는 점?

다시 병원을 나가면 내 폐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히 살아야겠다는 점... 등등...



그렇게 폐렴과 사투를 벌이다가 한 낮에 병원 침상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6월의 미지근한 바람 속에 문득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왕이면 평소 어려울 것 같아 쳐다보지도 않던 철학책이면 좋겠다 싶어, '니체'의 책을 탐색했다. 이상하게 육체가 소모되고 맥이 빠질 수록, 머리 속은 나른해지면서 무언가 집중이 잘 되더라. 아마도 철학자 니체님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평생을 질병에 시달리면서, 생각에 빠지게 되는 날들이 많으셨을 테고, '삶은 무엇인가. 근원적인 것들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이런 것들을 고뇌하지 않으셨을까? 대개의 철학자들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불행한 가족사가 있었다거나, 큰 질병을 겪었다거나 등등. 삶이 그렇게 녹록치 않을 때 위대한 철학이 탄생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 참고로 니체는 자신의 삶을 뒤쫓는 질병과 가난과 고독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생을 초월하는 의지를 길렀다고 한다. )


어쨌든, 니체 님의 글을 읽으면서 위로가 되는 문구를 필사해보려한다.

좋은 글은 나누면 더 좋아지니까!



<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중에서....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것이 나의 사랑이다.
추한 것들과의 전쟁을 멈추겠다. 바라보지 않겠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며, 앞으로 나는 긍정하는 자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는 모든 운명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를 괴롭힌 오래된 질병에 대해 고백하겠다. 나는 건강에 빚지지 않았다.
병을 통해 나는 배웠고 얻었다. 질병은 나를 죽이지 못했고, 그때마다 나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졌다. 나의 고차원적인 정신의 건강은 모두 병 때문이다. 나의 철학은 병에 걸린 덕분이다.
위대한 고통은 정신의 최종적인 해방이다. 해방된 자는 고통 받는 자다!
나락으로부터, 심각한 질병과 심각한 회의로부터 돌아온 자는, 반드시 새로 태어난다.



'나락으로부터, 심각한 질병과 심각한 회의로부터 돌아온 자는, 반드시 새로 태어난다.'는 말씀에 깊은 공감이 된다. 내가 청소년기에 읽었던 '데미안'에서도 '새로 태어나려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알을 깨어야 한다.'는 구절있었는데, 역시 삶의 진리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나태와 안정과 평화 속에서는 결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들이 때로 있다.

그런 면에서 인생에서 폐렴처럼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것들도 다 이유가 있어서 내게 찾아온 것은 아닐까 위안을 가져본다.


병에 걸렸기 때문에 고차원적인 정신의 해방을 얻었다는 니체님처럼,

병상에서 힘든 많은 분들이 정신의 평화를 찾길 바란다.


(참고로 폐렴에 대해서는 경험해 보는 것은 비추천이다. 평생 몰라도 좋을 아픔인 것 같다.

아니면 기저질환이 있으시면 예방접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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