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cold comfort farm 에 감명받다!
혹시 이 노래가 기억나실지 모르겠다.
주근깨 빼빼머리 빨간 머리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상냥하고 귀여운 빨간 머리앤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라
가슴에 솟아나는 아름다운 꿈
하늘엔 뭉게구름 퍼져나가네
빨간 머리 앤 귀여운 소녀
빨간 머리 앤 우리의 친구
https://www.youtube.com/watch?v=81TuiUwcJ30&list=RD81TuiUwcJ30&start_radio=1
이 노래랑 딱 어울리는 씩씩하고 똘똘한 영국 아가씨가 나오는 영화가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빨간머리앤의 배경은 캐나다 동부의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라는 섬이고,
'콜드 컴포트 팜'은 영국 시골 마을인 서식스에 있는 콜드 컴포트 농장이라는 점이다.
소녀 감성의 순수함을 되찾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번 보시길 추천한다.
아주 오랜만에 현실에 찌들지 않고, 백마탄 왕자를 꿈꾸던 열일곱 여고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페미니스트라고 오해받고 싶지는 않지만, 주변 상황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가는 여성상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꽤 좋아한다. 아마 스스로가 가지지 못한 씩씩함이나 사랑스러움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호감이랄까.
특히나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인 플로라 포스트(케이트 베킨세일)가 말 한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부모를 여의고 오갈 데 없이 당장 먹고 살기가 막막한 시점에
그녀를 아끼는 친구(?)는 '앞으로 어떻게 살 계획이야? 일을 해야하지 않아? 경리나 양봉사 같은 거라도..'
라고 말하지만, 이에 대해 주인공은 그런 건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거절하며 이렇게 말해버린다.
"나는 53세쯤 '설득'같은 좋은 소설을 쓸 거에요. 물론 현대풍으로. 저는 제인 오스틴과 공통점이 많아요. 지저분한 걸 못참거든요."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아, 바로 이 영화가 내가 찾던 영화구나' 싶었다.
가족을 잃고, 직업도 없고,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한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의 분명한 꿈과 다소 황당한 계획을 밝히며, 남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착실하고 자신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남자의 청혼도 거절하고, 그녀의 친척들 중 가장 그로테스크하고 힘들어보이는 시골 촌구석의 농장에 가기로 결정한 것.
원래 시골 살이는 멀리서봐야 로맨틱해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그 촌스럽고 인간다우며, 다분히 자연에 노출적이고 불편하고 느린 그 삶이 언젠가는 꼭 살아보고 싶은 삶의 유형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영국 시골 농장에서의 그로테스크하며 낯설고, 새로운 삶이라니.
먼지 폴폴 나는 오래된 방과 소똥내 풍기는 농장에서의 흙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하루를 상상해 보라.
푸른 들판, 귀여운 소떼들, 할 일 없이 나른한 오후와 느긋하기 짝이 없는 티타임과 바느질.
자기만의 방에서는 농장에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로 소설을 창작하며,
각자의 고민으로 불행하고 살고 있는 사촌들, 이모, 이모할머니의 문제까지 하나씩 척척 해결해주며
콜드컴포트 팜에 속한 그녀의 친척들은 모두 각자의 행복을 찾는 데 성공한다.
동화같고 만화같고 비현실적이지만 뭐 어떤가.
소설은 현실과 다르니까 매력있는 것 아닌가.
현실에서라면 상류층 귀족과 농장 처녀의 결혼은 성사될리가 없을 것이고,
평생을 한곳에서만 머물며 변화란 건 꿈도 꿔보지 않던 중년 부부가 각자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각자의 갈길을 가게 되는 것도 꿈같은 일이다.
더구나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에 갇혀 평생을 방안에서만 머물며 "난 끔찍한 걸 봤어요. 바깥은 위험해요"라고 외치던 할머니가 보그 잡지를 보고 난 뒤, 패셔너블한 디자이너가 되어 파리로 떠나는 장면도 너무 통쾌하다!
아마 70세는 족히 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할머님의 우아한 패션은 마지막 부분의 백미이다~
나도 늙어서 은빛으로 빛나는 멋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다.
농장에서 삽질이나 하고 있지만 영화에 진심인 사촌을 위해 헐리우드 감독을 소개해주고,
매년 출산을 하느라 고생인 하녀를 위해서는 현대의 신문물인 피임법도 알려준다.
모든 에피소드가 그저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럽다.
게다가 알고보니 대배우인 영화의 주인공인 '케이트 베킨세일' 배우님의 젊은 시절의 풋풋함은 또 얼마나 설레는지.
마지막 장면에는 모든 이들의 꿈을 이뤄주고, 자신도 자신을 기다려준 그녀의 사랑과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며 끝이 난다.
이 장면을 보는데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명장면이 오버랩된다.
평생의 사랑과 함께 하는 유일무이한 가장 아름다운 순간. 하늘에서의 둘만의 비행.
뭔가 여러 영화나 소설 작품들이 오묘하게 오마주된 느낌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컨츄리풍 해피엔딩 스토리를 사랑한다.
제목은 한역하자면 '차가운 시골 농장'쯤 되겠지만, 실제로는 아주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였다.
시골에서의 따뜻하고 행복한 나날들을 꿈꾸게 해준 감독님께 감사드리며,
인생 영화 한 편 추가한다!
컨트리, 오 마이 컨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