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전쟁의 문턱에서 (영화 리뷰)
26년 상반기는 이란과 미국 전쟁으로 많은 분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계시는 힘든 나날들이다.
이 와중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시대적 흐름이라는 게 느껴진다.
물론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전쟁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철학을 밝히기 위함은 아니다.
정치적 발언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사이에서라도 가급적이면 공개화하지 않는 것이 서로의 관계 유지를 위해 좋지 않을까? (특히나 공무원 신분인 내게는 더욱 그렇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고, 셋이상 모이면 의견이 엇갈리며 언성이 높아지게 된 건지 모르겠다.
여기 그 위험성을 더 절실히 깨닫게 해준 영화가 한 편 있다.
영화의 출발은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 파티에서 시작한다.
인생의 황금기이자, 가장 순수하고 이상을 꿈꿀 젊은 시절의 그들은 서로에게 단순한 대학 졸업 동기를 넘어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인생의 동반자가 된다.
세 친구는 그저 '미친 시대'에 태어나 평화를 꿈꾸던 순수한 청년들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 사상적 갈등이 배제된 지성의 전당인 옥스포드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가, 실제 전쟁같은 외교적 현실에 마주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합리적인 영국인의 상징같은 휴 레가트 역(조지 매카이), 패전국인 독일 출신이자 히틀러에 대한 독일인의 시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인 폴 폰하트만(야니스 니뵈너), 그리고 역사적 희생자인 유대인 역할의 레나(리브 리자 프리스).
세 친구는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을 가진 다른 나라 출신이지만 그들의 우정이 진심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솔직히 전쟁을 다룬 영화나 소설을 그다지 즐겨 읽지는 않았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하나로 연결될 수 있고, 누군가의 다툼이나 갈등, 폭력적 사태를 방관해서만도 안 되기에, 저 머나먼 유럽이지만 영국과 독일의 관계가 궁금했었다.
영화 속에서도 히틀러의 정복 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의외로 독일 내에서 군부, 정치인 세력 중에 반히틀러 정서를 가진 세력들이 존재함이 영화 속에서 고증된다.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직전인 1938년, 전운이 감돌고 하루하루 위기 속에 서로의 관계, 어제와 오늘의 '말,말,말'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그 위태로운 시기가 영화의 배경이다.
이러한 거대한 이야기가 영화의 소재이기 때문에, 당시 유럽 각국의 정치적 입장이나, 전쟁의 원인과 전개 양상, 실제 역사적으로 비난받던 '뮌헨 협정'의 주인공인 영국 총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영화는 보는 내내 관객의 초조함과 절박함을 유발한다.
현실을 고증한 시대극, 역사극이 매력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전쟁의 문턱에서' 전쟁을 막으려는 두 주인공은 옥스포드 동문인 절친 사이이다. 물론 정치적 견해가 달라 서로 소식을 끊고 산지도 몇 년 됐고, 안 본 사이에 누군가는 결혼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애인을 잃어 완전히 신념이 달라진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게 된다.
그럼에도 젊은 시절의 순수한 우정을 공유했고, 서로를 응원했던 그들은, 정반대의 대립국의 입장에 처한 상황에서도 '평화 유지, 전쟁 발발의 방지'라는 인류애적 목표를 공유하며 비밀 첩보 작전(?)을 실행한다.
그 가운데에 유대인 친구이자 현재는 반신불구가 된 홀로코스트의 희생자 레나가 등장한다.
나치군의 고문에 못 이겨 건물에서 뛰어내린 레나의 현재를 본 순간,
전쟁에 대해 중립적이고 거리를 두던 이성적인 레가트는 히틀러를 암살하겠다는 야욕과 무모함을 보이는 폴의 행동을 막을 수 없음을 알게되고, 본인 역시 전쟁에 대해 방관하는 게 아니라,
전쟁의 피해를 막고 가족을 지키겠다는 결심으로 공군 입대를 선언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실, 폴은 히틀러와 단 둘이 독대하고 권총을 가슴에 품었음에도 암살에는 실패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 이 대사가 인상깊었다.
"나에게 그럴 권리가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극악무도한 전범이지만, 그런 악한 사람이라도 차마 죽일 수는 없었던 폴의 인간적 고뇌랄까.
사랑하는 연인이자 소중한 친구를 잃고, 신념이 다른 친구가 서로의 고뇌 속에 대립하다가 같은 목표를 추구하게 되는 그런 내적 갈등의 과정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공감이 됐다.
나라도 지켜야 하지만, 가족도 지켜야 하고, 친구도 지켜야 하고, 무엇보다 그 모든 어지러운 세상을 대하는 나의 신념도 지켜야 한다.
전쟁 영화라지만, 영화 속에서 총성은 한 번도 오가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는 실제 전쟁보다 더 치열하고 절절한
'전쟁을 일으킬 명분과 전쟁을 막아야만 하는 명분'에 대한 처절한 대립과 갈등이
많은 이들의 신념과 견해 차이 속에 극명하게 오고 갔다.
결국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많은 이들이 이유도 모른채 희생된다는 게 씁쓸할 뿐이다.
폴도, 레나도, 레가트도 전쟁을 선택한 적은 없다.
그저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처절했던 시대에 각자의 방식으로 맞서 싸웠을 뿐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과거에 이미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이라 결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만약 그때 그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세계 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희망을 품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