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박사님의 강연을 듣고
송길영 박사님은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 출신으로 빅데이터와 관련하여 다양한 일을 하시며 미래에 관한 전략을 가르쳐주시고 계신다. 컴퓨터나 미래 과학, 데이터학 등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상태이지만, 박사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이미 나의 일상에도 깊이 침투해 있는 '미래'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문과 출신인 필자가 대학에 재학할 때, 같은 동아리인 공대 출신 선후배님들이 주마다 치르는 수많은 시험들과 새로운 실험들의 창의성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일화는 신문지로 벼루를 세우라는 건축학과의 과제와, 크리스마스 전날에도 치뤄지던 끊임없는 전자과의 쪽지 시험의 기억들이다. 그때는 그저 유유자적 문학서나 읽고 프랑스문학 강의를 듣고, 일어 회화를 들으면서 종이 시험으로 논술을 치르던 게 다 였던 나로서는, 공학도들의 학습법이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만 졌었다. 어리석게도 그들이 다루는 기술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 여기며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없이, 순조롭게 대학을 졸업했었다.
그런데 사실, 코로나 시국을 겪으면서 교육 현장에도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비대면을 통한 교수학습을 급격하게 진행해야했고, 과목별 특성에 따라 매체를 선택적으로 다룰 줄 알아야 했으며, 근무 환경을 떠나, 개인적으로도 디지털로 전환되는 미래의 삶에 적응해야했다.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선배 교사분들 중에는 명예퇴직을 하신 분도 계셨고, 기술과나 컴퓨터과 전공 선생님들께서 멘토가 되어 동료 장학도 많이 해주셨다. 학생들도 과제나 시험을 구글 클래스룸이나 실시간 수업, 패들릿, 녹음, 녹화 등으로 다양하게 치르게 되었고, 끊임없는 it도구들을 재학습해야만 했다. 물론 20대 선생님들은 이미 대학강의를 비대면으로 많이 해본 경험이 있었고, 각종 도구들을 다루는 능력 또한 이미 갖추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애매하게 mz세대의 끝자락에 걸린 덕에 인터넷을 조금은 다룰 줄 알았지만, it 기기활용에 그다지 적극적인 편은 아니었기에 이런 변화가 혼란스러운 것은 여전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 댓글, 표정이나 사진, 기록물 등이 영구적으로 저장된다는 사실과, 누구에게나 오픈되는 개방성을 띤다는 것. 익명성을 틈타 딴짓거리를 할 틈도 없이 우리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은 서로 얽힌 채로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카톡으로 근무 대화를 나누고, 페이스북으로 상대방의 과거사를 모두 들여다볼 수 있으며, 오픈 채팅방을 열어두면 전국 어디서든 우리가 속한 집단에 끼어들 수 있다. 물론 저장 방식과 공개방식을 수정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끊임없이 '연결에 연결'을 거듭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망이 있는 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전제는 변함이 없다.
어쨌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으면서 미래를 일찍 앞당긴 덕에 정보의 바다 속에서 길을 잃은 중년 세대들이 많을 텐데-나를 포함해서-. 송영길 박사님의 강연은 그러한 혼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받는 느낌이었다. 박사님의 표현대로라면 '불안하고 막연한 미래를 대비하는 생존 전략'을 전수받은 것이다. 박사님께서는 모 스포츠 브랜드의 슬로건인 '저스트 두 잇'에 한 단어를 더 붙여 'Don't do it' 전략을 써야한다고 언급하셨다. 아무 생각 없이 미래 사회에서 막연히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한 뒤, 나에게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 소중한 가치를 실행할 방법을 찾아 꾸준히 실천하고, 소소하게 기록하여 남기라는 것.
사실 이 방법은 우리가 이미 해 왔고, 앞으로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저장하고, 그러한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찾고, 공감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것. 그것 역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소중한 것' 중에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묵묵히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과 그러한 시간의 나이테가 쌓여 나의 데이터가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나만의 생각과 경험, 가치를 함께 공유할 누군가-아마도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들과 비대면의 세계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다보면, 미래 사회라는 카오스 속에서 내가 발 디딜 공간 하나쯤은 마련할지도 모르겠다는 점.
'저스트 두 잇' 말고, 'Don't do it' !!!
역설적인 이 슬로건이 또 하나의 나침반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