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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아름다운 단양에서

인생무상을 느끼다.

by 은비령

늦가을의 단비 같은 '재량휴업일'을 맞아 오랜만에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충청북도 단양군.

'붉을 단'에 '볕 양'.

붉은 기운과 태양의 양기가 가득한 청풍명월의 고장.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소백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안락하고 아름다운 고장.

어쩐지 가을에 유독 더 아름다울 것 같은 기대감에

장시간의 운전도 피로하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로 국내 여행상품이 많이 개발되어서 그런지

패러글라이딩이나 집와이어 알파인 코스터 등 각종 놀잇거리도 즐비해서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예전에는 멋진 풍경을 보아도 그다지 감탄스럽지 않았고,

어딜 가도 있는 비슷한 시장 구경도 지루하기만 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은 가는 곳마다 감탄스럽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들의 날갯짓 하나에도 마음이 울컥 인다.

소나무들의 모양이나 바위의 모양마저 다 제 각각이고,

언제부터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묵묵히

시간을 견뎌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이 약해지는 걸까.

기업형이 아닌 가내 수공업이 분명해 보이는

아주머니들이나 할머니들이 파시는 지역 특산품 하나라도 사드리고 싶고,

관광거리 앞에 소박하게 지어진 낡은 옛 건물들을 보면

그 안에 살고 계실 토박이 주민분들의 일상이 궁금해진다.

코로나 시국 이전에는 그렇게도 의무감처럼 해외여행을 다녔는데,

국내 곳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음에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든다.


결국 아무리 멋진 곳을 찾아 헤매고 다녀보아도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은 사소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단양 여행 중 유명하다는 단양 8경 중 다섯 곳을 다녔는데

(만천하 스카이 워크, 단양 시장, 온달 관광지, 도담 삼봉 등)

모든 장소가 다 제각각 다른 멋을 지니고 있었지만

'온달 관광지'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었고,

'도담 삼봉'에서는 그 기막힌 풍경에 살아 있음이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도권에서 이 정도 풍경을 지닌 곳이라면

나들이객이 넘쳐날 텐데,

이토록 한가하게 가을의 햇살을 만끽하며

과거로 여행 온 듯,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현재의 잡다한 시름들이 다 씻겨가는 듯 후련함과 평안함이 느껴졌다.

고구려의 옛 궁궐을 드라마 세트장으로 재구성한 유적지를 둘러보니

이런 시조가 떠올랐다.


오백 년(五百年)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듸 없네.

어즈버 태평 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그렇게 싸우고 치열하게 살아도 백 년도 안 될 인생인데,

무얼 그리 서두르고 원망하며 살았던 건가 싶기도 하고.

뭔가 '인생무상', '호접지몽' , '초로인생'이런 단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단양 여행을 하면서 또 한 번 여행의 의미를 떠올려본다.


# 여행이란 내가 '머무르던 곳을 떠나서'

새로운 장소에 '발을 디디고'

익숙하지만 낯설고 설레는 '또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감동'을 받으며

'삶의 의욕'을 다시 찾는 것에 그 본질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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