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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차 여행 나들이

떠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을 꿈꾸는 시간

by 은비령

장장 3년 만에 걸었던 빗장을 풀어준 이웃 나라 일본에 다녀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게 된 것이 내가 일본을 친근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고.

과거의 암울했던 한일 관계의 역사는 뒤로 하고서라도

어찌 됐든 배울 점이 많고, 특히 나에게는 정서적으로 동질감이 드는 나라이기에

일본 여행은 너무나 기대되고 기다려졌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일본에 관한 몇 가지 책을 읽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았던 책은

<일본 기차 여행>이라는 작은 수필집이었다.

철도가 발달하고 유명한 일본 전역을 jr패스로 여행하면서

주제에 맞게 따스한 일화를 소개한 책이었는데,

이를 테면 '첫사랑의 도시 ooo'이라는 제목으로

해당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을 소개하고,

작품 속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여행을 하는 관점에서 글을 풀어나가는 식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기차를 마음껏 타보기'로 결심했다.

기차를 타고 한량이 되어, 어디든 자유롭게 가보는 것이다!


사실 여행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을 관광하는 일.

또 하나는 지금 여기가 아닌 또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일 그 자체.

나의 경우 첫 번째 목적보다는 두 번째 목적이 더 컸었나 보다.

힘들고 보잘 것 없는 현실이라는 시궁창에서 벗어나

여행자와 외국인의 관점에서,

제 3자의 눈으로 타국의 삶을 관찰하는 일.

아마도 그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일이 즐거운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현실의 삶의 세계는 화면 속 세계, 혹은 이야기 속 세계와 같지만 다르다.


현실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버거울 때, 여행을 시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목적지가 어디이든 상관없이,

'그저 여기서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탈출해보고 싶다.

그저 떠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자유로움 하나로도 삶을 버텨낼 힘이 샘솟는다.'


많은 이들이 삶에 지쳤을 요즘,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도망가듯 떠난 여행지, 철도 강국 일본에서

짧고 긴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신칸센, 특급 열차, 지방 소도시의 몇 량짜리 미니 열차, 수많은 지하철과 지상철들.

다소 거친 소리를 내며 달리는 옛 기관 열차부터

미끄러지듯 쾌속으로 달리는 최신형 고속철도까지.


기차 안에 머무르며 공간을 이동하거나

공간을 벗어나 움직이는 기차의 겉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은 이토록 활기차게 지속되며 끊임없이 나아가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했다.


오늘의 마음 상태와 어울리는 시 한 편을 적는 것으로 마무리하려한다.





<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기차에 관한 명상 >

- 정현종 지음


기차는 떠나서

기차는 달린다.

움직이는 건 가볍고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달리는 기차 바퀴 소리의

그 꿈결이

이 기나긴 쇳덩어리를 가볍게

띄운다- 꿈결 浮上 열차-

교행(交行)때문에 서 있으면

근심도 서서 고이고

꿈꾸는 간이역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는 움직인다.

움직이는 건 가볍고

움직이는 근심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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