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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야 잠잠해져라.

대만 예류 공원에서

by 은비령

7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대만 예류지질공원.


처음에 이곳을 마주쳤을 땐 별 기대 없이 왔다가

'세상에 이런 곳도 존재하는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는데

7년 만에 다시 왔더니

그 사이 높은 파도와 거센 바닷바람 탓인지

더욱 풍화되고 깎여서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사암조각들이

'또 만났네요. 다시 만나 기뻐요ㅡ 잘 지냈나요?

그새 많이 변했네요. 나도 많이 변했죠?'라고 안부를 건네주는 듯했다.


자연과 친구가 된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느끼는 반가움에 벅차하다가

오늘은 또 넘실대는 파도가 울부짖는 것처럼

철썩철썩 치면서 거품을 일으키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파도는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거센 비바람을 몰고

애꿎은 여왕머리 사암 친구들을 괴롭히나 싶었다.


작은 전망대가 있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올라갔는데

단지 몇 계단 올랐을 뿐인데도

아래에서 넘실대는 파도에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던가 싶게 고요하고 평화로워진다.


비바람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이렇게 평안한 마음으로

아랫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구나 싶어서

왠지 또 뭉클했다.


나는 지금 바다 바로 곁에서 온몸으로 맞서서 파도와 싸우고 있는 걸까

아니면 멀찍이 떨어져서

어딘가 고요한 곳에서

파도와 사암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 걸까.


'관조'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에는 '주관을 떠나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철학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적 생활이

인간 최고의 이상적이고 행복한 생활이라 했다고 한다.


비바람에 성난 파도가 사암을 집어삼킬 듯 치는 어느 하루에, 잠시동안 이 모든 풍경을 고요히 관조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다음번에 만날 때

아름다운 사암은 어떤 인사를 건네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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