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성장통은 성장통이다. 괜히 심술이 나고, 억울하고, 이룬 것 없이, 내가 원하던 삶의 모습에서 너무 벗어나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계속 살아가도 되는걸까. 많은 의문이 들었었다.
마흔의 삶은 어떤 의미일까. 책임감이 높아지고, 인생에서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뤘어야하는 나이. 이제는 막연하고 철없는 꿈은 꾸지 못할 나이.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나이... 그게 사회가 정해놓은 마흔이라는 어른의 역할아닐까.
서른만 넘으면 큰 일 날 줄 알고, 깊히 생각하지 않고 서둘렀던 결혼 때문인지. 아직도 어른 아이이면서, 다 아는 척했던 오만 때문인지. 나는 그 나이가 그렇게 아쉽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
신생아를 키우고, 그 아이가 두 발로 걸어다니고 뛰어다니고, 유치원엘 가고, 이제 벌써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저걸 어떻게 메지?'싶을 만큼 꽤 무게감 있는 책가방을 메고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싶다. 언제 아이가 저렇게 자라버린 걸까.
반면에 나는 언제 이렇게 늙어버린 거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다들 동감할 테지만, 어느새 내 나이는 잊게 되고, 아이의 나이만 세는 날들이 온다. 심지어 '년'단위가 아니라 '개월', '일' 단위로 아이의 일상을 기록하고 의미를 되새기면서,
정작 나의 '나이 듦', '나의 현재'에 대해서는 너무 하찮게 여긴다.
실은 전혀 하찮지 않은 것이었다, 나의 삼십대는!
더 꿈꾸었어도 괜찮았을 나이이고, 더 무모했어도, 철없어도 괜찮았을 너무 소중한 젊음이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혼자서 다 감당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애써 버텨왔지만, 사실 그 시간들이 모두 녹록치는 않았기에. 소중하지만, 흘려버린 나의 삼심대 중, 후반에 대하여. 안쓰럽고 애처롭다. 바람 불면 사라질까, 흔들면 무너질까 아쉬운 것이 바로 청춘아닐까?
청춘이란 원래 '푸른 봄'이란 뜻인데, 솔직히 지금 거울을 보면, 내 나이 마흔 하나의 생얼이 그다지 푸르지는 않다. 흰머리가 많이 생겨서 한 달에 한 번은 염색을 꼭 해야만 하고, 발목, 발가락, 손목, 허리, 어깨 등등 관절은 주기적으로 쑤시기 시작했고, 어쩐지 눈매도 처진 것이 무언가에 지친 모습이다.
지난 주에는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82년생이시죠? 저도 82년생인데, 생애 첫 암 검진 시기셔서 암 보험이 꼭 필요하세요~" 헉.. 정말 동갑 친구일까?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동갑이라니 괜히 반갑고 안쓰럽고 그렇다.. 같이 늙어가는 동질감이 이렇게 클 줄이야... 마흔을 산다는 건 이런 의미이기도 하구나. 건강에 대비해야 하는 나이. 이제는 어디 하나 고장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
그러던 어느 날, 뉴스에서 만 나이라는 것을 도입한다고 했다. 만 나이면... 나는 서른 아홉이네? '서른 아홉'이라는 숫자가 주는 중압감을 이미 한 번 거쳐왔기에, 나는 그 나이가 썩 반갑지는 않았다. 단순히 어려진다는 것이 반갑다기 보다는, 내가 겪어온 삶의 시간들을 다시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하려나? 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실제로 서른 아홉과 마흔을 이미 살아왔다. 서른 아홉에는 마흔이 되기 전에 무언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안달감을 겪었고, 마흔에는 이제는 꺾였구나. 나의 청춘은 이렇게 흘러가는 구나. 하는 아쉬움을 겪었다. 그런데 이미 통과한 터널에 다시 들어가라고? 아무리 법은 법이라지만, 나이가 젊어진다는 것도 즐겁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정말 어색한데..
더욱이 웃긴 것은 사실은 아무도 내 나이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이 나이만 중요하지, 엄마들 나이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사실 다른 아이엄마들의 나이를 모른다. 묻기도 애매하다. 나도 밝히기가 싫었기에. 그저 저 정도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 비슷한 또래이겠거니.. 생각은 하지만.
그리고 회사에서는 내 나이를 밝히면, 그것이 바로 내 경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굳이 새파란 신입들 앞에서 '내 경력이 이 정도야~'하고 자랑하고 싶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경력'이 주는 책임감도 있기에. 꼰대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이미 아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내 과거, 내 젊은 날의 모습을 알고 있기에 지금 나이를 애써 말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간혹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사람들과 내 모든 것을 공유할 만큼 쉽게 친해지기도 어렵다.
하... 어쩌겠는가? 다시 살라면 살아봐야지. 왜 하필이면 서른 아홉으로 돌아가야 하나. 나 삼십대라고 우기기에도 민망한데. 이왕 다시 시작할 껏, 마흔부터면 어색함이 좀 덜할 것 같다. 내 생각에, 마흔은. 생각보다 괜찮은 나이이다. 뭔가 안정적이고, 흔들림이 덜한 나이이다. 십대가 아무리 팔팔하고 좋을 나이라 해도, 다시 사춘기를 겪고, 대입을 겪으라 하면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이가 몇 살이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의연히 견뎌왔고, 각자가 처한 나이와 상황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지금의 나이에 이르렀을 것이다. 나이를 바꿔준다니까 이제서야 드는 생각인데. 왜 그렇게 나이에 집착했던 걸까? 서른 아홉과 마흔과 마흔 하나는. 그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시간의 경계일 뿐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건 오늘, 지금 이 순간, 현재일 뿐이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부터 나는 나이를 잊고 살기로 했다. 잊어야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시한부도 아니고.. 마흔 하나라고 해서 평균 수명에 비해 남은 생이 몇 년이다.. 세면서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또 나는 몇 살이니까, 그 나이에 맞게 살아야해! 이런 중압감에 시달리고 싶지도 않다. 나이를 세며 친구를 사귀고 싶지도 않고, 나이에 얽매여 할 수 있는 일을 미뤄두고 싶지도 않다.
마흔 한 살에서 서른 아홉으로 어려(?)졌지만, 그냥 담담히 나로 살아가보련다. 2년의 시간은 보너스라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