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좁아진다.
아이랑 통화를 하고 탄 엘리베이터,
한 번에 탄 십여 명의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시끄럽게 떠든다. 평소 같으면 신경도 안 쓰일 잠깐의 소음이지만, 화가 난다. 조용히 좀 하시면 안 될까요?라고 외치고 싶어 진다.
복잡한 지하철 안, 가만히 서있기도 힘든데 너도나도 팔을 뻗어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휴대폰에 뭐 있어? 왜 잠깐도 안 보면 안 되는 거야? 그냥 얌전히 팔을 모으고 있으면 훨씬 편할 텐데!!
너무나 익숙한 상황이지만 오늘따라 부아가 치민다.
길게 눈을 감았다 뜬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겠는 두툼한 패딩의 뒷모습이 보인다.
저 패딩에 고개를 묻고 울고 싶다. 아마 이상한 아줌마라고 기겁을 하겠지?
아이의 졸업까지 약 한 달이 남았다. 잘 적응할 거라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나도 너도 노력했는데 결과가 좋지는 않다. 평일은 학교를 가는 날과 안 가는 날로 나뉜다. 안 가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게 문제다. 등교 거부 동안 학교에 안 가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음을 경험한 탓인지, 늦게 일어나는 날은 여지없이 온갖 핑계를 갖다 대며 등교를 거부한다. 더 억울한 것은 핑계의 끝은 항상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향한다는 거다.
아이를 일찍 재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미 머리가 커질 대로 커진, 똑같이 늦게 자는 아이들과의 소통이 너무나 즐거운 밤의 재미에 푹 빠진 아이는 일찍 자고픈 의지가 없다. 나라도 살기 위해, 최대한 기분 좋게 해 주고 다음 날 학교에 잘 가는 것에 대한 약속을 받고 잠이 들지만, 출근해 한참 일하다 보면 아이가 일어나지 않고 버틴다는 카톡이 울리기 시작한다.
주말은 아이가 입원했을 때 가고 싶다던 바닷가 캠핑을 다녀왔다. 2박 3일만 예약이 되는 캠핑장이고, 당시는 아이가 금요일에 일러스트 학원을 다니고 있었기에 토일월을 예약했었다. 하루 남은 체험학습일, 시원하게 털기로 했다. 겨울 캠핑은 생각보다 꽤 힘들었고, 돌아와 아이도 피곤했을 거다. 아이에게 일찍 자자고 했으나, 11시에 웬 게임을 결제해 달란다. 12시까지만 하겠다 하고 다음 날 학교 가는데 지장 없기로 하니 난 또 결제를 해줘 버렸다. 내 자식 내가 믿어야지. 약속 지킬 거야.
자고 있는데 방문이 열린다. 아이가 들어와 내 옆에 눕는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아니라 내 방에 같이 자고 있던 고양이를 보러 온 것이다. 그대로 잠에 들어버리고, 싱글 침대라 불편하여 내가 아이방 가서 자기 위해 시계를 보니 12시 50분이다. 12시 50분은 12시라는 아이의 시간 개념은 아직도 유효한가 보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내일 잘 갈 거야 하며, 잠이 달아날까 아이방에서 다시 잠에 빠졌다.
그리고, 출근했는데 이상하다. 택시를 불러달란 것도, 또는 아이가 못 일어난다는 카톡도 어느 소식도 없다. 설마, 일찍 일어나 걸어간 거야? 희망을 갖고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이는 여전히 자고 있다고 하며, 나에게 카톡을 보낼 수 없을 정도로 엄마도 상처를 받으신 상황이 느껴진다.
일하다 미팅하다 중간중간 아이와 연락을 취해봤으나 곧 간다는 말 뿐이다. 그러다 내가 화가 나 버렸다.
"정말 미안해. 돈 줄게"
어제 게임 결제비? 문제의 원인을 파악 못하는 아이가 한심스러웠고, 그걸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한탄스러웠다. 그동안 나를 어떻게 봤길래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돈이면 해결된다는 생각이 어떻게 아이한테 박힌 걸까... 아이를 잘못 키웠단 생각에 현기증이 났다.
구독자 3만 명의 틱톡커 중학생 언니를 우상처럼 여기는 아이에게 옆에서 챙기는 엄마와 할머니는 그저 하찮은 존재라는 걸 요즘 많은 일들을 통해 느끼고 있다. 그 언니가 하는 말과 행동은 아이에게 꿈이며 이상이다. 현실에서 아이의 미래를 위해 조금이나마 관여할 수 있을 때 잡아주고 싶은 나와 할머니는 꼰대일 뿐이다. 그래, 아이니까 그럴 수 있어. 아이를 바로 잡는 게 내 역할이라며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오늘은 나도 참기가 힘들다. 늦게 일어나 다시 태블릿 모니터의 펜부터 집어드는 아이에게 또 강수를 두었다. 성공률 제로지만, 부족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이런저런 핑계 대고 학교에 가지 않으며 그림만 그려대니, 학교에 안 가면 태블릿 모니터를 버리겠다고 했다. 결국, 아이는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고, 그렇게 나를 낳기 싫었으면 나를 죽여라. 자살해 버리겠다며 몹쓸 말들을 쏟아낸다. 더 이상하면 엄마가 화를 낼 거 같으니 그만하자며 끊고 엘리베이터를 탄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수다는 내 귀를 찔러댔다.
아이가 밉다. 힘들다.
솔직한 나의 마음이다. 내 모든 생활이 망가지면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 한 달만 버티면 되는데 기운이 나질 않는다. 오랜만의 캠핑은 버거웠고, 온몸이 아프다. 아이 일을 보느라 다 써버린 휴가에 쉴 수도 없어 출근했다. 추운 날씨에 어딘가 부딪힌 팔은 부어올랐고 젓가락 질을 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런 와중에 더 슬픈 건, 나는 아이를 믿었다는 거다. 현관을 닫고 나오며, 엄마에게 하지 못한 말이 떠올라 다시 열고 말할까 하다가 서두르느라 그냥 나왔었다.
"엄마, 오늘 꼬마화가, 학교 잘 갈 거야. 나랑 약속했어."
내일은 어떤 날이 될까. 아이의 유급을 각오해야 할까.
우울증은 약으로 많이 좋아졌지만, 아니 요즘 우울감은 느낄 수 없지만, 본래의 틀어진 성향은 우울증을 무기로 더 강해진 것 같다.
업어 키운 손녀딸에게 무시당하는 엄마, 내가 아플까 전전긍긍 걱정하시는 엄마 생각에 더 마음이 미어진다. 부족한 나는 오늘은 아이를 바로 볼 자신이 없어 지하에 숨어 버렸다. 엄마를 챙겨야 하는데 말이다.
오늘은 나를 위한 저녁을 준비했다. 배달앱의 반갑지 않은 '천생연분' 딱지를 받을 정도로 아이의 음식을 시켜주다 질려 나는 언젠가부터 저녁을 먹지 않게 되었다. 항상 남는 음식이 아까워 좋아하지도 않는 돈가스를 같이 먹었더란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걸 먹고 싶었다. 그래서 회를 사 와 와인과 함께 이 글을 쓰고 있다. 엄마와 같이 먹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오늘은 나와 있고 싶다.
가족의 치매가 한 집안을 풍비박산 내는 것처럼, 등교 거부도 현재의 나에겐 그렇다. 올해 나는 없었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나중에 아이가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제 남은 한 달, 조금만 노력해 주면 좋겠는데 자기만의 라이프에 빠져 본인 컨디션도 조절 못하며 즐기기만 하는 아이를 감당하기 힘들다.
앞으로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장담 못하겠다. 친구들도 불편하고, 학교에 가면 뭐 하냐는 아이를 설득하기 힘들다. 나에게 부족하다고 누군가 욕해도 할 말 없다. 난 그저 사랑으로, 한 사람의 인격으로 아이를 대하려고 했을 뿐, 그게 잘못되어 내가 벌을 받는 거라면 할 말이 없다.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꿈 때문에 자퇴를 선택한다면, 마음은 아프겠지만 지원해 줄 의향이 있다. 중학교는 가고 싶고, 애니메이션 전공도 하고 싶은 딸은 현재를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백날 얘기해도 그저 꼰대의 잔소리뿐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1월 9일, 아이의 졸업식..
나는 울겠지.
그 울음이 기쁨의 회한의 눈물일지, 아니면, 결국 무력했던 나에 대한 한탄의 눈물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내 마음아, 힘들지? 조금만 버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