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안지가 없는 인생
이제야 부자엄마가 되겠다고, 20년간의 부끄러운 소비 습관을 고치고 제대로 미래를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한 지 얼마 안 되었다. 그동안 가장 바꾸기 힘들었던 나의 마음가짐만 고치면, 이제 좋아질 줄 알았다. 아이도 좋아지고 있으니까.
그러나, 인생은 참 쉽지 않더라.
최근,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아이의 소비가 늘면서 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물론, 난 부모니까 아이를 조절해야겠지만, 그게 쉬울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막연히 내가 계획한 예상 소비액으로 미래를 계획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퇴직 후 두어 달 투자 공부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재취업을 1순위로 계획을 바꾸었다. 아직 월급쟁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예상했었고 내가 원한다고 빨리 취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 우선순위가 바뀐 것은 괜찮았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학교 가기 싫어
따뜻해진 낮에 반팔을 입고 다니다 심한 감기에 걸린 아이는, 평소보다 쉽게 병원에 따라나섰다. 어지간히 아프구나 싶었지만 사실은 독감 진단을 받길 원했다는 걸 진료 후 알게 되었다. 독감도 코로나도 아니란 말에 의사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독감이 아니래. 학교에 가기 싫은데,‘라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입학 후 이제 한 달도 안 지났는데, 잘 적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담임 선생님께서도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과 사물함 매점을 연다고 용돈을 보내달라던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자랑해야 한다고 화장품을 사달라던 아이였다.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차에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아이와 대화를 했다. 역시나 문제는 친구와의 관계였다. 반 아이들 모두 자기를 싫어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왜 너를 싫어한다고 느끼는 것 같냐고 물었다.
학기 초, 가장 대화를 많이 했던 친구는 최근 아이가 말을 하면 대답을 안 한다고 한다. 아이도 일부러 재밌는 행동을 하며 친구들의 관심을 끌려 노력했으나 친구들이 무시한다고 한다. 단톡방에서 왜 나를 싫어하냐고 물으니 네가 부담스럽다 했다고 한다. 이제야 아이의 과도한 소비의 이유를 알겠다. 아이는 친구들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거다.
우리 아이가 일반적으로 친구들에게 매력 있는 타입이 아니란 걸 솔직히 인정한다. 아이의 감정세계는 복잡하고 세밀하다. 부모도 이해하기 힘든데, 아직 성장 중인 또래가 아이를 이해하긴 힘들 것도 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이는 독특한 성향일지언정, 그 마음만큼은 너무 여리고 선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어떻게 지켜야 할까
아직 등교 거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작년 경험을 통해 바로 내일부터 학교 보내기 꽤 힘들어질게 예상된다. 내가 아는 방법은, 질병결석과 체험학습으로 우선 시간을 벌기, 그마저도 넘어가면 미인정 결석일을 쌓기, 그마저도 힘들면 숙려제를 택하기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좋지 않고, 과정 자체가 아이의 마음 건강과 가족의 관계에 좋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잘 넘어갔다고 생각했지만, 작년 한 해는 이렇게 일상을 살고 있음 자체를 너무 감사해야 할 정도로 우리 가족을 망가뜨리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터의 꿈을 꾸는 아이에게 꼭 정규 교육이 답일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미 반에서 소외감을 느껴버린 아이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무슨 이런 일 한 번으로 그래?라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걸 나는 겪었다. 작년 한 해는 나에게 그걸 가르쳐 주었다. 아이가 아프지 않도록, 마음을 열고 어떤 결정이든 내려야 한다.
그래도 너무 마음이 아파
"엄마 내가 아까 말이 심했어, 미안해", " 엄마, 고마워"
늘 힘든 일상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를 보며 더 잘살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었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으니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고 표현하니까.
이 아이를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고민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당장 학교에 가지 않고 그 아이들을 피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다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아이가 덜 상처받으면서, 꿈을 찾아 나갈 수 있는 그 길을..
인생의 어려움은 불청객 같은 주름과 흰머리에서 오는 게 아니다.
답을 모르는 길에서,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오는 것 같다.
다만,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만큼은 믿고 싶다.
그래서 난 그걸 믿고, 무언가 선택하려 한다. 그 선택을 당장 꺼내놓진 않겠지만, 꺼내야 했을 때 내 결정에 대한 확신을 견고히 하기 위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