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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Jun 15. 2024

거절을 가르치지 못한 죄

그 벌은 쓰다

한참 덥다 반가운 비가 내려 선선한 주말이다.

일을 쉬고 있어 딱히 힘든 게 없는데도 꽉 막힌 가슴에 몸살이 세게 났다가 이제야 정신이 들어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씩 하며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려던 참이었다.




아이에게 전화가 온다. (나는 지하실에서 작업 중)


"엄마, 30만 원만 줘."

"30만 원? 뭐 하게?"


왜 필요한 지 묻긴 했지만, 처음 드는 생각은 14살 아이가 스스럼없이 달라고 하는 금액의 액수였다.


언젠가부터 사고자 하는 물건이 있으면 필요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정말 아이가 갖고 싶어 할 만한 것들은 생일, 크리스마스 선물의 이름을 달고 사준 적도 있다. 그러나, 갑자기 몇백만 원짜리 3D 프린터를 사달라고 한다던가, 백만 원이 넘는 일본의 중고 피겨를 사달라고 할 때면 거절하느라 진땀을 빼곤 했고 사그라들 때까지 답답한 대화와 카톡 세례를 받아야 했다.


매달 가는 정신의학과 선생님께 상담을 드렸다. 아이가 쓰기 부담스러운 금액대여도 사고 싶은 게 생기면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고 얻어낼 때까지 고집을 피우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니 ADHD 성향이라고 약을 증량하자고 말씀하셨다. 사실, 약 이외에도 상담 치료가 같이 이뤄져야 하는데 상담은 말도 못 꺼내게 하여 약처방을 위한 병원 방문만으로도 만족하는 상황이라 약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매일 학교에 가는 게 어디라며.. 




오늘은 또 무엇에 꽂힌 걸까?

아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디 가수에게 작곡을 의뢰했다고 한다. 자기의 노래를 갖고 싶다는 것이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30만 원에 작곡이 가능한 것도, 역으로 10대의 아이가 30만 원의 큰돈으로 의뢰한다고 하니 그걸 받아준 성인인 그 가수도.. 모두 다 이해가 힘들다.


노래를 갖고 싶은 이유는 알겠으나 미리 엄마와 상의하지 않았고, 지금 당장 쓰기엔 큰 액수라며 거절했다. 이유를 듣고 거절하자 아이는 이미 약속했다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기 싫다고 비난, 협박, 애원.. 등 온갖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날 지치게 하면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가르친 걸까?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아이가 어렸을 때, 문방구나 마트에 가면 딱 한 개만 고를 수 있게 했다.

처음에 원하는 걸 집었다가도 다음 것이 갖고 싶으면, 훨씬 싸고 작은 것이라도 아이는 첫 번째 것을 내려두고 두 번째 것을 집어 들고 기분 좋게 가게를 나섰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아이에게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다는 것을 잘 가르치고 있다며 내심 뿌듯했다. 그러나, 거기엔 한 가지가 빠져있다.


"한 개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지 못했다"

항상 엄마와 어딜 가면, 뭔가 하나 손에 들고 오는 게 당연한 것이다. 단순히 한 개이고, 아이가 골라봤자 가격이 저렴한 물건이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아이는 필요 여부와 상관없이 항상 무언갈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가르쳐야 한다.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일관적인 모습이 중요하다. 아이와 길게 통화하며 내 감정은 상할 대로 상했고 지쳐갔다. 순간, 정말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정말 필요했더라도 곡을 의뢰한다고 약속하기 전 나와 먼저 상의했어야 하는 거다. 여기서 흔들려 허락하면 다음에 더 무리한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정말 힘들었지만, 끝까지 안된다 하니 결국 아이도 포기했다.

글을 쓰며 아이가 했던 말들을 털어내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다. 


이제 아이의 상심한 마음을 달래주고 엄마의 생각은 어땠는지 얘기해 줘야 한다.


"꼬마화가, 갖고 싶은 걸 포기하는 게 힘들었지? 엄마도 잘 알아. 그리고, 그 가수에게 취소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살면서 '거절'을 잘하는 것도 아주 중요해. 안 그러면 남에게 끌려다니며 살게 돼. 오늘 큰 성장을 했다고 봐. 엄마도 네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면 편하겠지만, 엄마도 경제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너에게 '거절'과 '포기'를 가르칠 수 없게 돼.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도 그 노래를 갖고 싶으면 그때 다시 얘기해 보자. "




하루하루 누군가 '너 좀 골탕 좀 먹어봐라~!' 하며 힘든 과제들을 던지는 느낌이다. 하나하나 풀어내가며 아이를 바르게 키워나가는 게 나의 역할이니 부서지는 멘탈 부여잡고 침착하게 해결해나가려 한다. 


커버 이미지 : Unsplash의 Jon T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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