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맞음 주의
생전에 검소하시던 아빠가 부끄러워하던, 아픈 손가락 장녀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한 것 같다'라는 표현을 안 쓴 건, 내 삶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걸 믿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지만, 확실하게 표현하고 싶다.
소비의 아이콘이었던 내가 왜 갑자기 부자 엄마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까?
사실, 진작 했었어야 했고 기회 또한 많았다. 그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한다.
잘난 척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아도 어릴 적 나는 기억력과 이해력이 좋았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주산학원에서 상업 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 앞에서 조 단위 암산을 하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었고, 시골에 가면 '신동'이라며 할아버지 장부를 암산으로 계산하며 동네 어르신들의 감탄을 받았었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서는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은 내성적인 성격과 공부를 해야 하는 동기가 없던 나를 모범적인 학생으로 이끌진 못했다. 그렇다, 나는 '머리는 좋으나 노력이 부족한 학생'이었다. 게다가 굉장히 감정에 지배되는 타입으로 힘들 때는 나를 마구 망가뜨리며 괴로워했고, 그 방식은 주로 과한 소비였다. 기분이 좋을 때는, 나에게 후한 보상을 해주며 기쁨의 세리머니를 했었다.
미래? 미래는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고 연봉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준비가 될 줄 알았다. 아니, 세세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늘 '오늘'만 살았다.
그러나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15년 만에 전 직원 5명 회사의 비전공 웹디자이너에서 외국계 기업 Creative Manager 타이틀을 달 수 있었다. 물론, 일을 시작하고서는 나의 현실을 깨닫고 부지런히 공부하여 커리어를 쌓긴 했다. 이 노력들은 지금도 우리 팀원들에게 간간히 얘기하는 꼰대 성공 스토리 중에 하나다.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고, 좋은 학교를 나오지도 못했지만 차근차근 쌓아왔던 커리어는 나에게 자랑스러운 타이틀과 적지 않은 연봉을 보상했고 나는 그것에 만족했다. 현재는 글로벌 기업을 나와 다른 곳에 있지만, 이전 보상이 기반되어 욕심만 안 낸다면 만족하며 다닐 수 있다.
해피한 스토리는 이제 끝이다. 2019년 이직 후 디자인 팀장으로 새 회사에서 자리를 잡아가는데 코로나가 터졌고, 약 3년간 재택근무를 하며 나의 긴장은 마구마구 풀어졌다. 물론, 내 일을 잘하는 건 기본이었지만 여유 있어진 시간을 이용해 여가를 제대로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캠핑 매거진에 다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작년부터 주 5일 출근을 하게 된 데다가 회사는 판교로 이사까지 해 주셨다. 집에서 편하게 일하는 게 너무 당연해진 나의 체력은 판교 출퇴근에 너덜너덜해졌고, 아이의 등교 거부까지 보태어 정신 건강마저 위태해졌다. 그래도, 그동안 쌓은 신뢰와 경험으로 매달 월급을 꽂아 주시는 회사가 있음에 늘 감사하며 버텼다. 그러나, 회사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당연한 건데!) 최근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하는 조직이고, 그만큼이 안 된다면 비용을 줄여야 하는 게 순리이다. 지금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나도 미리 계획하지 못한 플랜 B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체감된다.
최악의 상황으로, 당장 구직을 해야 한다면? 그동안 실무를 접고 매니징만 했기에 빨리 직장을 구하긴 어렵다는 걸 안다. 실무는 금방 적응하니 실무자로 지원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나의 몸값을 많이 내려야 할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올린 연봉이 발목을 잡는다.
예전엔 막연히, 내가 일을 그만두면 몸이 건강하니까 배달일이라도 할 수 있다며 아이에게 큰 소리를 뻥뻥 쳤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고민해야 할 상황이 되니 여기저기 아픈 40대 중반의 내 몸이 아서라~ 아서라~ 한다. 배달은 쉽니?
내가 드리는 생활비에 어느 정도의 금융 소득을 보태어 노후 준비를 하신 엄마에게도 기댈 수 없다. 내가 드리는 돈이 끊기면 엄마도 힘들어지실 거기 때문이다.
아.. 막막하다.
"에이, 괜찮아요. 전 돈보다 경력이 더 중요해요"
부끄럽지만, 13년을 근무했던 글로벌 기업으로 이직하며 내가 했던 말이다. 연봉 자체를 얼마나 적게 불렀는지, 협상 없이 바로 한 번에 결정되었고, 나중에야 매니저를 통해 얼마 이상 더 불렀어도 채용하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속은 쓰렸지만, 그래도 여기 온 게 어디예요~ 라며 사람 좋은 척을 했더란다.
그렇다. 나는 돈 얘기 자체를 하기 부끄러운 사람이었다. '돈'을 좋아하면 속물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돈'을 좋아해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최근에 경제 서적을 미친 듯이 읽고 있다.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참 자본주의에 최적화되어 있었구나 싶다. 슬픈 건, 자본주의 세상에서 퍼주는 포지션에 있었다는 것이다. 예금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두 번도 생각 안 하고 바로 결제하는 마케팅 수단의 먹잇감, 그게 바로 나였다.
사십 대 중반, 사회에 나가 경쟁하기엔 자신 없어진 나이.. 내가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했다. 수많은 고민 중 내린 결론은 '돈을 벌자'이다. 근로소득이 아닌, 자본소득을 벌어야 할 때임을 깨달은 것이다. 즉, 내 생각 자체를 깨야 한다.
그동안, 유명하다는 재테크 책은 사실 많이 읽었었다. 그때마다 나는, '뭐라는 거야? 아무나 사업해? 아무나 투자해? 딴 세상 소리 하시네'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 거라지. 많은 나이에 불안한 미래가 닥치자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글로벌 기업, 디자인 팀장.. 모두 허울 좋은 타이틀이었고 본질은 월급이 끊기면 생활이 힘들어지는 그냥 나는 시한부 월급쟁이였다는 사실이 다가왔다. '돈'은 부끄러운 게 아닌 자본주의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재임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차근차근 공부하고 있다. 아직까지 아이로 인한 고민이 해결된 게 아니기에 집중력을 많이 빼앗기지만, 이전엔 힘들다고 와인 한 잔 하며 의미 없는 영상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은 이럴수록 더 내가 공부해야 해한다며 투자 공부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아직 공부 중이라 눈에 띄는 투자 성과는 당연히 없지만, 쓸데없는 소비를 안 하게 된 것으로 이미 반은 성공한 것 같다. 준비성이 철저한 타입이라 항상 무언가 부족해서 불편할까 봐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나의 삶의 미덕이었다. 이젠 그것이 정말 필요할까?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는 않더라. 그러나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아도 커가는 딸에게 쑥쑥 나가는 돈을 보면서 긴장의 끈이 더 조여진다.
돈 공부를 제대로 하면서 관점이 많이 바뀌고 있다. 이젠 정말 제대로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소비력이 터진 딸을 감당하기 힘들지만 그만큼 내 소비를 줄였기 때문에 아직까진 괜찮다. 많은 나이, 갑작스러운 퇴직 리스크를 예상하지 못한 내가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준비를 시작했음에 용기를 갖고 나를 다독이며 끝까지 해보련다. 이전의 나였으면 봄을 맞이하느라, 따뜻한 날씨에 여행을 준비하느라 엄청난 소비 계획을 세웠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될 때까진 월급쟁이를 좀 더 하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참 걱정이다.
커버 이미지를 찾기 위해 Unsplash에서 'Money'를 검색했더니 지폐 이미지만 나온다. 'Rich mom'을 검색하니 아이와 아름다운 자연에서 여유를 즐기는 이미지가 나온다. 그렇다 내가 원하는 'Rich'는 바로 저런 것이다. 그 모습이 되기 위해 이젠 제대로 해보련다.
이 글을 보시는 젊으신 분들은 지금이라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소비는 멈추고, 나의 진짜 행복과 미래를 준비하시면 좋겠다. 이룬 건 없지만,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인생선배로서 꼭 드리고 싶은 말이다.
커버 이미지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