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도, 지적도 사양합니다.
따분한 오후, 배도 부르고 키친타월도 떨어져 가기에 코스트코에 다녀올 차비를 했다. 혼자 후딱 다녀오는 게 편하지만 딱히 외출할 곳 없는 엄마에게도 말씀드리니 흔쾌히 따라나서신다. 엄마도 따분하셨는지 꽤 신나 보이신다.
사실, 엄마와 차에 둘이 타면 여러 번 들었던 옛날 얘기, 신세 한탄이 지루하기도 하여(맞장구 잘 못 치는 스타일) 혼자 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기분 좋은 엄마를 보니 잘했다 싶다.
그러나 와장창 기분이 망가진 사건이 있었으니...
주차된 차로 가기 위해 앞장선 내 뒤에서 들리는 소리.
"와하하. 언제 봐도 네 다리는 영락없는 남자 다리야. 근육 좀 봐!"
헛. 엄마 이게 지금 웃을 일입니까?
기분이 몹시 나빴다. 왜냐하면 굵고 튼실한 내 다리는 45년이 흘러도 적응 안 되는 가장 큰 콤플렉스이기 때문이다. 뼈도 굵어, 근육도 많아, 지방도 많은 두 다리 덕분에 예쁜 스커트도 반바지도 나에겐 너무나 먼 그대들이었다. 젊은 아가씨일 때 얼마나 예쁜 치마를 입고 싶었을까. 항상 긴치마와 통 넓은 바지로 감춰왔던 다리를 꺼내놓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다리가 예뻐진 게 아니라 그저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살고 싶었을 뿐이다.
아빠를 꼭 닮은 내 무다리, 엄마는 근육 없이 매끈한 새다리인데 동생은 엄마를 꼭 닮았다. 즉, 이 집안의 여자 중 무다리는 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날씬한 다리의 엄마가 놀리면 정말 기분이 나쁘단 말이지. 얼마 전엔 다리가 좀 보이는 옷을 입고 외출하려던 참에 엄마께 여쭤보았다.
"엄마, 나 다리 많이 굵어 보여?"
"네 다리가 어때서? 그거 다 재산이야! 나이 들면 다리 힘으로 사는 거야."
이건 괜찮다는 건지, 안 괜찮지만 건강하니 용기를 갖으란 건지. 예쁘게 말 못 하기 대회 1등 나가라면 서러운 엄마에게 별 걸 다 물어보았다.
"엄마, 내가 다리 얘기 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왜 자꾸 해? 엄마라도 기분 나쁘단 말이야."
"그러게. 내가 푼수다"
코스트코까지 가는 길, 차 안은 정적이 흘렀다.
이 나이에 굵은 다리를 가졌기 때문에 속상한 게 아니다. 뼈를 갈아낼 수도 없고, 야위어 보일 정도로 살이 빠져도 다리만큼은 튼튼한 걸 알기에 이미 포기했다. 그저 더 굵어지지 않게 현재 체중을 유지할 뿐이다.
성격이 이상하지 않는 한, 타인에게 외모 지적을 할 사람은 많이 없을 거다. 나도 밖에서 들은 건 딱 한 번 뿐이었다.
"이야. 길치 이제 보니 운동선수 누구 다리와 똑같네!"
동창회에 간다고 나름 꾸미고 나간 자리에서 귀까지 빨개진 후 그 사람을 내 마음속에서 손절했다. 그 외 다리에 대한 지적은 늘 가족들이었다. 김치만 담그면 우리 집은 무 안 사도 된다며, 길치 이리 와봐라~ 하는 농담에 십 대의 내 자존감은 상처를 많이 입었다. 많이 단단해진 것 같지만, 아직 내 안엔 그때의 어린아이가 있나 보다. 엄마의 농담에 발끈해 버린 걸 보니 말이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걸까? 엄마에게 너무 톡 쏜 것 같아 미안한 마음 반, 싫어하는 거 알면서 굳이 그 말을 해서 내 속을 건드린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 반이었다.
대화는 없었지만, 엄마가 필요한 사탕과 들깻가루 등을 카트에 담으시는 걸 보니 크게 담아두신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다.
오늘 내 반응은 나이 답지 않게 철이 없었다. 조금 더 차분하게 말씀드릴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가장 가까운 가족끼리는 더 조심해야 한다. 냉랭한 내 반응에 서운했을 엄마에게 사과드리고 다리에 대한 농담은 그만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