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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Jul 20. 2024

현실 자각 면접, 내 길은 어디에 있나

사십춘기의 방황

40대 중반의 오랜만의 면접, 일정이 잡히고 흥분도 되었지만 긴장과 부담의 시간이었다.


나름 있어 보이는 경력이지만 최근 1년 간은 아이 일로 정신이 반 나가있었기에 일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전 직장의 결과물이 너무나 소박하여 내세우기 부끄러움도 있었다.


그래도 인생은 타이밍이니 기회가 왔을 때 잡겠다며 열심히 준비했다. 내 역량을 한 시간 안에 조리 있게 전달하기 위해 거울 보며 연습했다. 곱게 화장까지 하니 다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차오른다.


그러나, 첫 면접은 폰스크리닝이었다. 실제 면접 하기 전 업무에 적합한지 전화로 이력을 파악하는 단계를 전화 대신 화상으로 진행하는 거였다. 준비한 자기소개며 내 가치관과 업무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할 틈 없이 최근 결과물과 전 직장에 대해 브리핑한 뒤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팀원들과 함께 진정으로 열심히 만든 제품이지만, 회사의 규모가 작아 큰 기업 기준에서는 한없이 허술해 보일 수 있다. 있어 보이게 포장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진 않았다. 없는 살림에서도 열심히 만들었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걸 보니 아직 배가 덜 고픈가 보다.


나도 수많은 채용을 진행했기에 느낌이 단 번에 왔다. 떨어졌구나.


끝난 뒤 잠시 멍했다.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입사한다면 상사가 될 분의 낭랑하고 똑 부러지는 목소리 대비 점점 기어들어가던 내 목소리, 그리고 말할 때마다 신경 쓰이던 이마의 주름이 초라했다.


다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실무직이라면 툴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던 의지는 사그라들어버렸다. 정식 백수가 된 지 갓 20일이지만, 출근 안 한 기간을 포함하면 3개월이 되어간다. 그동안 뭐 했을까? 부동산 투자도,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간만 보며 시간을 보낸 것 같아 한 없이 우울해졌다.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려면 시시하게 하고 싶진 않은데... 다른 일을 준비할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닐까? 욕심만 버리면 세상에 할 일은 많을 텐데 말이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뭐해먹고 산담.




"엄마, 나 산티아고 순례길 지금 당장 가고 싶은데.."

"다녀와~"

"실업급여 때문에 안돼. 중간에 출석해야 해."

"엄마가 대신 출석하면 안 돼?"


늦은 저녁, 아이가 먹고 싶다던 피자를 시켜놓고 둘러앉았다. 망친 면접에 저녁 자리는 날씨만큼 우울했으나 엄마의 마지막 말에 빵 터져버렸다.


"하하. 엄마 무슨 80년대 민방위인 줄 알아?"


내가 국민학생 때는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바쁜 남편대신 민방위에 대리출석하는 아내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렸었다.


은퇴 후 후련하게 떠나려던 나의 버킷리스트 산티아고 순례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당장 생활비가 없는 것도 아니니 지금 다녀올까?라는 생각이 부쩍 든다.


하지만 여러 이유들이 발목을 잡는다. 직장을 가나 산티아고를 가나 아이 등하교를 못 시켜주는 건 똑같으니 그건 빼도 고용센터 출석도 해야 하고 내가 없으면 엄마가 고생하실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쿨하게 다녀오라던 엄마의 말씀이 위안이 된다.




기분이 울적하면 <A star is born>을 본다. 벌써 몇 번째 본지 모르겠다. 좋은 음악과 함께 브래들리 쿠퍼의 눈빛, 레이디 가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그냥 마음이 편해진다.


헝클어짐 속의 따뜻하고 단단한 잭슨의 눈빛, 영화의 메시지랑 상관없이 그 눈빛을 보면 위로가 된다. 그러다 내가 앨리만큼의 재능이 없다는 현실도 자각하고...음…


다시 취업에 도전할지,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장마가 끝나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못 가도 산이라도 올라야겠다.


누군가 한 마디 해주면 좋겠다.

"길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사진: Unsplash의 Les Argona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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