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의 사연 #1_'감사'라는 주파수
개학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던 이번 학기
찰나의 고민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나는 휴학을 맞이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과제와 시험공부에 버거울 때면
종종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며 아껴두었던 휴학
그것을 병실에서 맞이할 줄이야
그동안 휴학을 비상구로만 생각했던 나
정작 닥치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할애할까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따위는 만무했다
여느 때와 같이 병실의 무료함이 반복되던 그 어느 날
동생 지혜는 고이 접은 쪽지와 함께 작은 선물상자를 건네왔다
“언니, 라디오 알지?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주파수만 켜면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떠드는 엄청 수다스러운 아이야
언니가 옆에 없으니까 허전해서 요즘 자주 들어
나처럼 언니도 수다스러운 말동무가 필요할 때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가 한없이 듣고 싶을 때
좋을거야. 힘이 됐으면 좋겠어.”
속는 셈치고 맞춰보는 주파수
병원 밖 사람사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2년 동안의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고자 고백을 결심한 소년
오늘도 야근 중인 남자친구의 건강을 염려하는 여자친구
늦은 밤까지 안전하게 승객을 모시는 아빠를 응원하는 딸
올해는 아들이 꼭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길 기도하는 엄마
갇힌 공간 내 거울 속
무기력한 나만을 바라보다
무심코 잊고 지낸 사람사는 이야기들을
비로소 그 때 내 이야기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불철주야 동네 지키랴 이웃 지키랴
본인 몸보다 남 걱정에 매일을 보내는
그래도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제일 걱정된다는 우리 아빠
식당일을 나가시기 전이나 후
매일매일 병실 침대 옆 불편한 의자 위에
몸을 쪼그려 누워 내 곁을 지키는 우리 엄마
한창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모자를 요즘
소개팅에 미팅에 눈코 틀 새 없이 바빠도 모자른
나날에도 불구하고 주중 주말 나를 찾아오는 동생 지혜
어두운 내 모습만 봤기에 옆을 비추는 불빛은 간과했나
얼핏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고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
말 못 할 미안함이 차오른다
문득, 세상 모든 일들이 사람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감사할 일들이 무엇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스친다
그래서일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올 때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줄 때
넘어졌을 때 내밀어주는 손에
오랜만에 쏟아지는 따뜻한 햇빛에
사람들은 보다 감사해하고 기뻐하나 보다
가누기 힘든 내 몸을 비관하며
하루하루를 원망으로 채워갔던 나
너무나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것들에
오늘따라 내 시선이 보다 오래 머무른다
그래 오늘을 마무리하기 전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생겼다
감사한 것들에 대해 써보자
언제 어디서 다시 되새길진 모르지만
이 때, 내가 정말 감사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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