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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경 Nov 29. 2023

track#10 언제든 슬퍼할 준비되어 있는 사람

https://youtu.be/QfjjrgvGR0k?si=kvZkoNp0dmIh-Qhq




언제든 슬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밤새도록 뒤척이던 넌

담요 속의 고양이 한 마리처럼

내 마음을 서럽게 하네


밤새도록 취해있던 넌

슬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너무 좋은 기억력 때문에

언제든 슬퍼질 수 있는 사람

내 마음을 서럽게 하네

내 마음을 서럽게 하네


언제부턴가 말이 없던 넌

세상에 기대가 많았던 사람

너무 뻔한 거짓말 앞에서

모든 표정을 잃어버린 사람

내 마음을 서럽게 하네

내 마음을 서럽게 하네






blackbird fly blackbird fly

into the light of the dark black night

[Blackbird], Beatles


1. 슬픔에 대해

 

출처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신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라는 널리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어떤 긍정적인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은 아닙니다. 선박 사고로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 다리를 잃은 전쟁 난민, 성폭력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생존자 앞에서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있을까요.

 

고통은 많든 적든 한 사람을 영원히 바꿔놓습니다. 고통이 머물다간 마음에는 유령 같은 자국이 남습니다. 남은 한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립니다. 치명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외상 후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신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말은 마치 시련을 잘 극복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슬픔은 잠시 다녀오는 곳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시간을 들여 경험하는 것입니다. 슬픔은 사람을 바꿔놓습니다. 일단 슬픔을 겪고 나면 그 누구도 그 전과 같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슬픔의 시간을 만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각자가 지나온 슬픔의 총합입니다.

 

널어두지 않은 빨래가 문득 생각나는 것처럼 뚜렷한 이유 없이 불현듯 떠오르는 슬픔도 있습니다. 마음의 우물에 슬픔이 아슬아슬하게 차 있는 사람, 여차하면 슬픔이 넘쳐버리는 사람이 있죠. 오늘은 딱히 별 일이 없었는데, 불운한 하루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에 잠겨있는 모습을 보는 건 힘든 일입니다. 침묵이 무표정하게 자리한 그 마음에 본래는 티 없는 웃음이 넘실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서럽습니다.

 

2. 위로에 대해

 

더 좋은 위로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누군가 곁에서 울고 있을 때 ‘내 마음을 서럽게 하네’보다는 더 좋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시인 박준은 그의 산문집에 위와 같이 썼습니다. 멋들어진 문학적 수사가 없는 맨얼굴의 문장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맨눈으로 보는 일상의 슬픔은 멋도 없고 폼도 안 나는 게 대부분입니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을 때, 멋진 위로의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떨어져서 함께 울어줬으면 싶을 수도 있죠.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같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함께 있어주고, 밤이 되면 꼭 안아줘야겠습니다.

밤은 언제나 다시 찾아오고, 우리는 슬픔에게 인사를 건넬 것입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말했듯,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

 

글_황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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