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10년째 보면서 드는 이런저런 생각들 #4
* 아래 글은 2020년 1월에 발간된 빅이슈코리아 218호 TEXT 부문에 동일 제목으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추천 영상을 보다 보면 두세 시간 순삭은 기본이다. 2011년 정도까지만 해도 유튜브에 있는 모든 영상이 3분, 길어야 5분이었는데 말이다. 지금도 지상파 채널이 본 방송을 십분 단위로 잘라서 유튜브에 올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유튜브는 TV나 영화보다 훨씬 짧은 길이의 영상을 보는 용도라는 느낌이 강하긴 하다. 하지만 유튜브가 2012년부터 워치 타임(watch time: 조회수가 아닌 시청자가 영상을 재생하는 시간의 길이)을 우선시하면서 10분 이상의 컨텐츠를 '권장'하게 된 후, 러닝타임이 긴 영상이 많아졌다. 이 변화는 처음에 큰 반발을 맞긴 했지만(이 반발은 약 일 년 뒤 6초 동영상 플랫폼 '바인(Vine)'의 형태를 띤다), 예상과 달리 긴 온라인 영상에 대한 수요는 확실히 있었다. 한 시간짜리 팟캐스트가 유튜브에 업로드되기 시작했고, 그것을 세컨드 채널이 아닌 메인 채널의 컨텐츠로 진행하는 크리에이터들도 많아졌다. 이때 함께 부상한 것이 코멘터리 영상이다. 2-30분 길이의 비디오 에세이를 전문적으로 올리는 코멘터리 채널이 많아지자, 일상을 공유한다는 함의가 강한 '유튜버'라는 말이 이런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면서 유튜버와는 다른 종류의 크리에이터들이 유튜브에 몰렸다. 한마디로 컨텐츠의 다양화가 이뤄진 것이다. 유튜브 알고리즘 변화가 코멘터리 영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고,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영상을 소비하는 방식까지 바꿔버렸다. 이 장르를 대표할만한 세 명의 크리에이터를 소개한다.
https://www.youtube.com/c/DrewGooden1/featured
드루 구든의 커리어는 6초 동영상 플랫폼 바인에서 시작해서 30분이 넘는 코멘터리 영상이 올라오는 유튜브 채널로 묘하게 이어졌다. 바인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드루를 'Road work ahead? Uh, yeah, I sure hope it does' 바인으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6AYv6rV3NXE&ab_channel=ICONIC.) 2016년 말에 바인이 서비스를 종료한 뒤, 수많은 바인 스타들이 유튜브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이들이 잠시 슬럼프였던 유튜브의 분위기를 많이 바꿔놓았다. 드루는 바인에서도 비꼬는 개그를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도 그 유머가 긴 형식에도 잘 맞아 단기간에 유튜브에서 바인에서보다 얻었던 것보다 더 큰 팔로윙을 얻게 됐다. 주로 인터넷 트렌드나 다른 유튜버들의 컨텐츠를 주제로 코멘터리를 진행하는데, '이 주제로 어떻게 개그를 치지'할 법한 것들도 입담과 재치 있는 편집으로 살리곤 한다.
드루가 많은 구독자를 얻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영상은 다른 유튜버들을 ‘까는’ 내용이다. 유튜버 제이크 폴(Jake Paul)이 8-13세 구독자들을 타깃으로 '성공적 유튜버가 되는 법'을 가르친다고 마케팅한 온라인 강의 ‘팀 1000(Team 1000)’이 실제로는 사기에 가깝다고 고발한 영상이 가장 유명하다.(https://www.youtube.com/watch?v=lz7UgBP-m7w&t=1037s) 가장 최근에는 유색인 여성으로서 첫 번째 레이트 나잇 쇼 호스트를 맡게 되었지만 형편없는 컨텐츠로 진행하는 릴리 싱(Lily Singh)을 비판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lex6USTugUU&t=1075s) 같은 유튜버로서 서로 감싸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튜브만큼 한 사람의 잘못이 커뮤니티 전체를 밉보이는 플랫폼도 없다. 그러니 내부자가 나서서 비판하는 것이 유튜브 커뮤니티의 성장에 늘 중요하게 작용해왔고, 이런 자치적 비판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으로서의 차별화에 앞으로도 필수적일 것이다.
https://www.youtube.com/user/PrettyMuchIt/featured
프리티 머치 잇의 듀오 에릭과 제이콥은 스스로 '유튜버'라고 부르지 않는 대표 크리에이터이다. 다른 북미 유튜버들이 전부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반면, 이들은 뉴욕에서 친구의 친구의 집을 전전하며 영화 코멘터리 트랙을 녹음한다. 녹음한 트랙 전체를 듣고 싶으면 이들의 홈페이지에서 사서 들을 수 있고, 하이라이트는 에릭이 영화 영상과 함께 편집하여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한다. 그래서 이들의 영상은 전부 저작권법에 걸려 수익화가 되지 않고, 앞에 광고도 뜨지 않는다. 이런 류의 영상의 수익화를 금지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업로드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의 코멘터리 트랙들을 들어보면 영화에 기생하는 컨텐츠가 아니라 독립적인 예능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프리티 머치 잇의 영상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영화 자체가 궁금해서 온 게 아니라 에릭과 제이콥의 말장난을 들으러 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약 7살 터울이다) 서로 안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에릭이 유튜브에서 다른 컨텐츠를 할 때부터 제이콥이 그의 팬이어서 그런지 찰떡궁합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다. 개그를 미리 준비하지도 않다던데 최근에 라이브 투어를 진행한 것을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두 남성 엔터테이너의 대화 치고 아주 건전한 편에 속하고 (자극적인 타이틀과 썸네일에 겁먹지 말길!) 개인적으로는 요즘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 중 가장 웃긴다고 생각한다. 댓글에서 사람들은 이들의 독특한 웃음소리를 듣고 <라이온 킹>(1994)의 하이에나 트리오에 종종 비교한다. 이들이 얼마나 웃긴지 궁금하다면 본인이 이미 봤거나 알고 있는 영화가 주제인 코멘터리를 먼저 보고 다른 영상을 이어 보기를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user/tiffanyferg
대학생 티파니 퍼거슨은 중학생 때부터 유튜버로 활동했다. 예전에는 당시 유행했던 브이로그, 일상, Q&A 영상이 주가 되었다면 요즘에는 인터넷 문화를 분석하는 긴 영상을 만든다. 티파니는 남성 크리에이터들이 지배적으로 인기가 많은 편인 코멘터리 장르에서 드물게 뜨고 있는 젊은 여성으로, 그녀의 시선은 필요한 것이면서도 독특하다. 틱톡의 비스코 걸(VSCO girls), 걸파워를 가장한 다단계 마케팅(MLM), '나는 다른 여자애들이랑 달라(I'm not like other girls)’ 슬로건에 관한 비디오 에세이가 특히 돋보인다. 또 티파니는 유튜버의 세금이나 비용처리 과정을 공개적으로 공유하는 드문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3NMQyrvp7o8&ab_channel=tiffanyferg)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아카데믹한 시선이 유튜브에 전무했다. 하지만 그 수요가 생긴 뒤 심리학자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분석하는 채널(Psychologist Watches),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미국 문화를 분석하는 채널(Lindsay Ellis) 등 전문 지식을 갖고 문화비평을 하는 채널의 인기가 커졌다. 요즘 유튜브에서 가장 긴 워치 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비평 채널이나 북리뷰 채널도 같은 맥락에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이다. 전통 미디어의 기자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밀레니얼과 제너레이션 Z 문화를 그 세대에 속한 당사자가 스스로 반성하고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앞으로 더욱더 필요할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사춘기를 보내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세대보다 인터넷 문화를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을뿐더러, 기술과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기술과 ‘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구체적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