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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ppysizedelephant Aug 21. 2021

구독취소

유튜브 10년째 보면서 드는 이런저런 생각들 #3

* 아래 글은 2020년 9월에 발간된 빅이슈코리아 234호 TEXT 부문에 동일 제목으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아무데도 나가지 않았는데도 너무 피곤했다. 소위 말하는 코로나 블루 때문일 것이다. 다만 남들은 한두 달 전에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거나 '뉴노멀'에 적응했다고들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잇달아 닥쳐온 사회문화적 격변 때문에 유난히 심한 혼란을 겪었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코로나 때문에 받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소비하던 컨텐츠가 사회문화적 격변의 논의의 중심이 되어 휴식의 공간이 사라진 기분이다. 이미 상반기부터 수많은 사회문화적 격변이 휘몰아친 덕분에 몇 달 전부터 2020년이 틀림없이 최악의 해라고 단정짓고 있었는데, Black Lives Matter(이하 BLM) 때문에 더욱 심란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영미권*에 살지도 않고 그쪽 시민권도 없다. 하지만 자가격리기간 동안 거의 유튜브에 살다시피 했던 사람으로서, 나의 쉼터가 전쟁터로 되었을 때 동요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 공간에서 소개할 만큼 애정하던 유튜브 채널이 각기 다른 이유로, 하지만 공통적으로 BLM 움직임이 시작된 이후로 업로드를 중단하게 되었다.


* BLM은 전세계적인 움직임이다. 다만 운동의 발단이 된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영미권에서 보다 더 가시적으로 진행된다.  

 


BLM과 유튜브


BLM에 관하여 브리핑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도 글도 아니지만 맥락을 위해서 간단하게 설명만 하자면 상황은 다음과 같다.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아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인해 흑인 시민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면서 BLM은 약 7년 만에 다시금 큰 운동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 운동의 중요성은 지금 다루기에 너무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대신 관련해서 자기주도적 공부를 할 수 있는 링크를 걸어놓겠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운동과 비슷하게 BLM은 법적 처벌 및 개혁의 요구뿐만 아니라 과거에 생산된 컨텐츠의 정밀한 검토로 이어졌다. SNS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이 공동체적 작업은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인 플롯이나 제작자를 고발하는 것을 넘어서, 뿌리 깊게 자리한 인종차별을 재생산하는 문화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표적으로 흑인 스테레오타입이나 흑인분장(blackface)이 '아이러니'하게 쓰였다 할지라도 그것이 앞으로 용인되어야 하는지, 그럴 가치가 있는지 등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치밀한 검토 결과, 특정 컨텐츠나 크리에이터가 인종차별적이라고 평가되면 보이콧하는, 즉 '취소(cancel)'하는 래디컬한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물론 유튜브도 예외는 아니다. 체감상 이번 BLM이 유튜브를 지난번보다 훨씬 크게 강타한 듯하다. 그 이유로는 먼저 지난 4-5년 사이에 유튜브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비교적 주류 문화의 위치에 오르면서 그 영향력 또한 보다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린 나이에 비판능력이 없이 특정 컨텐츠를 소비한 사람이 성인이 된 후 재반추하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


* ANTIRACIST ALLYSHIP STARTER PACK: 인종차별에 관한 기사, 책, 영화, 유튜브 영상 등 풍부한 자료의 모음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bUJrgX8vspyy7YttiEC2vD0DawrpPYiZs94V0ov7qZQ/htmlview 

이중 "현재 아시아인들이 흑인 사회를 위해 협심할 수 있는 일 26가지" 기사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https://docs.google.com/document/d/1yI_PvPxqtTgSU3b4d6SSP_yQ-3AOlnjKchMYBASyvnY/edit


Bon Appetit 채널에 무급으로 출연한 유색인종 셰프 중 한명인 Sohla El-Waylly. 사내 인종차별적 기업 문화를 고발하는 데에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얼마 있지 않아 내가 즐겨보던 Bon Appetit 채널에 영상 업로드가 멈췄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부적 문제에 의한 것이겠거니 했는데, 이런 내용의 댓글을 보게 됐다. “너무 재밌는데 흑인 셰프는 무급으로 영상에 출연한다니 유감이네요.” Bon Appetit 동명의 푸드 매거진 소유의 유튜브 채널로, 자연스러운 셰프들의 작업 환경을 보여줘서 아주 '무해'하고 재밌는 컨텐츠로서 지난 글에서 소개한적 있다. 한편 '회사가 뉴욕 트레이드 센터에 있는데 셰프가 거의  백인이네'라는 생각은  은연중에 했었고, BLM 이후에는 더욱 자주 했던  같다. 이윽고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Bon Appetit 편집장이    라티노 분장을  사진이 다시 떠오른 것으로 시작하여, 유색인종 셰프들은 동영상 출연비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중 일부는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력이 15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 셰프들을 보조하는 위치에 놓이는 , 백인 직원들과 비교했을  심각한 페이갭이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이런 시스템적 인종차별은 Bon Appetit뿐만 아니라 Vogue같은  매거진을 함께 소유하고 있는 모기업 Condé Nast 고질적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Bon Appetit측에서는 하루빨리 평등한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서명문을 내보냈지만, 본사의 인종차별 문제에 관하여 꾸준히 목소리를 높이며 협력하던 백인 동영상 편집자를 6  정직시켰다.  이후로는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기존 팬들조차 포기한 듯하다. 처음에는 항의  변화의 요구의 의미로 구독취소를 누른 팬들이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구독 버튼을 누를 일은 없을 듯하다.  



구독자의 딜레마


사실 위와 같은 사례는 비교적 ‘쉬운’ 편에 속한다. Bon Appetit은 대기업 소속 회사고, 영상에 출연하는 셰프들은 본업이 유튜버도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 유튜버가 아니기 때문에 구독자와 제작자간의 각별한 유대도 상대적으로 적을뿐더러, ‘처벌’과 ‘책임’에 대한 의무가 완전히 구독자와 제작자에게 있지는 않다. 한편 개인 유튜버가 진행하는 채널은 구독자와 형성하는 유대와 신뢰에 완전히 의존하는 형태를 띤다. 이는 상당부분 유튜브의 장점으로 작용해왔다. 유튜버 셰인 도슨의 경우 10년 이상 유튜브에서 활동하면서 탄탄한 컬트적 팔로윙을 거느린 덕분에, 유튜브 알고리즘에 맞춰 정기적으로 컨텐츠를 제작하지 않고 몇 개월에 한 번씩 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할 수 있었다. 한편 1,2차 BLM을 거치면서 그가 과거에 했던 수많은 인종 스테레오타입에 의존한 농담, 그리고 아동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한 성적 농담 등이 다시금 논의되었다. 이에 대한 답변을 담은 영상이 업로드 됐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셰인을 지지하고 신뢰했던 구독자의 다수는 그가 이런 선택과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성장배경’이나 ‘정신질환’같은 이유를 들면서 계속해서 정당화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중에서는 꼬박 10년이라는 세월을 셰인 도슨과 함께 한 사람도 있고, 그의 영상을 보면서 힘든 시절을 극복한 추억을 가진 이들도 있다. 따라서 그의 구독자들은 현재 이런 긍정적인 기억조차 부정해야하는 듯 한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이런 갈등을 호소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셰인 도슨의 레딧 페이지는 현재 (구)구독자들끼리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장소가 되었다. 그의 인종혐오적 농담이 곁들여진 영상을 보면서 자란 경험을 이야기하는 흑인 여성도 있고, 계속해서 셰인 도슨의 혐의를 부정하다가 이번을 계기로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유튜버를 덜 봐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다. 기존의 업무 현장이라면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성차별적 행동을 했을 때 피해자에 대한 보상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하여 그는 심한 경우 해고당하거나 좌천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셰인 도슨 또한 인정하는 바이다. 그는 이 결정을 그보다 며칠 전 영상을 업로드한 제나 마블스를 보고 내렸다고 말한다. 제나 마블스는 해당 영상을 업로드하기 전날 수십 개의 과거 영상을 비공개했는데, 이를 알아챈 나를 비롯한 많은 팬들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무기한정으로 유튜브 활동을 중지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는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과거에는 자신의 잘못과 발전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극단적인 결정을 내려야할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나 마블스 또한 셰인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흑인분장,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발언 등을 한 바 있지만, 잘못을 제대로 시인하고 이후 변화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리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동시에 나 같은 구독자들이 충격을 받은 만큼 그 파급력과 메시지가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겠다. 몇몇 흑인 유튜버들은 그들도 제나 마블스가 유튜브를 잠시(혹은 영원히)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아쉬웠지만 이 결정의 파급력에 주목해야한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바다 건너 일어나는 일이 침대에서 휴대폰을 보고 누워있는 나에게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나도 그 효과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지금은 비공개로 된 영상 속에서 제나 마블스가 ‘더 이상 이 플랫폼에 존재할 수 없다’고 한 말이 마음에 걸린다.



유튜브의 지속가능성


나는 늘 유튜브가 유저가 힘을 갖는 대안 미디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온 사람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여기서 ‘존재하기 어렵다’고 호소할 때, 우리가 만든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처음으로 되돌아보고 질문하게 되었다. 제나 마블스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을 지면서도, 자신의 삶을 담은 매우 개인적인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지속적인 비판에 노출되어 왔다. 그 비판이 이 사람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변화했다면 스트레스는 받지만 긍정적인 과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단편적인 논의만이 계속해서 두드러지는 환경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크리에이터의 유일한 기반인 구독자와의 유대관계를 훼손하기를 위협한다면? 근 몇 년간 유튜브로 돈을 얼마나 쉽게 벌 수 있는지 분석한 결과가 온갖 기사와 책으로 소개된 이후로 많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유튜브를 직업으로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 유튜버의 지속가능성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 직업은 개인의 성장을 진정으로 도모하는가? 유튜브는 어쩌면 인터넷의 가장 큰 미덕인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플랫폼으로서, 컨텐츠 규제를 거의 최소 수준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튜버는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득을 볼 수 있지만 그만큼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홀로 지게 된다. 한편 유튜버의 미덕으로서는 ‘진정성’과 구독자와의 끈끈한 관계 등이 강조되는데, 이것이 훼손된다면 그들은 영원히 사라져야만 하는가? 예전에는 이에 대한 답을 전부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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