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도 과로사할 수 있어요

by 잉여로운 백구인생
백수도 과로사하더라고요



그렇게 백수가 됐다.


특정 시간에 출근 및 퇴근을 하는 노동을 하고, 따박따박 받는 월급 및 수입이 없으니, 이런 이들을 우리는 '백수'라고 지칭한다. 육아 휴직을 하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그 카테고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 돌아갈 곳은 그래도 있으니(돌아가서 어떨지는 장담 못하겠지만) 반백수라고 해두자. 반백수라고 해서 혹자는 시간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경기도 오산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일단 육아 휴직 뒤(육아 휴직이라고 하니 굉장히 길다. 뒤에 후술 될 부분부터는 휴직이라고 칭하겠음) 밀렸던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그 일들이 눈에 보이느냐 절대 그렇지 않은 일들이다. 마침 꽃샘추위도 마감시즌이라 주섬주섬 겨울 옷들을 정리해서 넣고 봄옷들을 꺼내야 하고, 미뤄왔던 아이 병원 진료 등 눈에 띄지 않지만 처리해야 일들을 하다 보면 하루가 그냥 묶여 버린다.


그래도 스스로 자각하기에 백수 신분인지라, 아침에 얼른 일어나 지지가 않는다. 9시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힘들게 몸을 일으킬 필요도 없고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규칙을 지켜야 하는 나와 자유롭고 싶은 나’ 사이에서 수도 없는 싸움을 해야만 한다.


또 우리 백수들은 끊임없는 내적 고뇌로 인한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 밖에서 돈 버는 공노비 및 사노비들은 바쁜 업무를 처리하느라 혹은 자신과 맞지 않는 인간들과 억지로 웃고 앉아 있느라 내적 성찰을 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와 대화할 기회가 굉장히 많다. 이것을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기 연민 및 자책에 빠질 가능성도 많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우리 백수들은 그 누구도 긴장하게 하지 않으며, 묵묵하고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시간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는 평화주의자이기도 하다. 우리 백수들의 은근히 행복한 삶도 괜찮다는 인식들이 넓어졌으면 한다. 나만 몰랐었지, 이미 모두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백수도 과로사할 수 있다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나 비아냥거림이 아닌, 우리 백수들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과 공감의 말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