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상담받은 이야기
‘제가 어머니를 닮았다고요?’
하긴 놀랄 일도 아니다. 딸이 엄마를 닮지 누구를 닮겠는가.
심리 상담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어머니는 굉장한 야망가이며, 부잣집 딸이었지 않느냐. 따라서 ㅇㅇ씨(본인)와 사고 체계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참 대책이 없었다. 돈이 30만 원 밖에 없어도 그 30만 원으로 시원하게 소고기를 쏘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그런 시원시원함이 나는 늘 불안했다. 마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를 보는 것 마냥. 돈이 없는 것에 대해 한치의 전전긍긍함도 없었으며 걱정하지 않아도 가만 두면 다 해결될 것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늘 기저에 깔려 있었다. 언제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볼까, 나도 눈치 보지 않고 친척들 얼굴 좀 보고 싶은데 명절날 친척들 사이에 숨어 있는 건 나뿐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당당했으니까.
어린 나는 그런 엄마가 어떨 땐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정신승리법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프고 난 뒤에도 이모들에게 신세를 져도 ‘내가 니 이모들 어렸을 때 뒤치다꺼리 다 했으니까 이 정돈 받아도 된다. 아니, 네가 잘 돼서 나중에 다 갚으면 될 일 아니냐’는 식이었다.
아무튼 엄마는 매사 당당했다. 내 기억 속 절반의 엄마는 아프지 않았고, 나머지 절반은 몸이 불편한 삶이었지만 그것이 엄마의 당당함을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그런 엄마를 돌본건 k-장녀였던 언니였고, 나는 사실 엄마에게서 도망치기에 바빴다. 책임진 적이 없다. 그래서 사실 엄마를 크게 미워할 자격은 없다. 아픈 엄마를 돌본건 언니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가장 사랑하고 아꼈던 존재는 자신을 쏙 빼닮은 나였다. 나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성취에 대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하려는 열정적인 모습이 누구에게 온 것인가 했는데, 엄마의 기질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여요. 저는 ㅇㅇ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굉장히 놀랐어요. 집을 나선 지 5년 만에 강남에 샵을 차리다니요, 게다가 꽤 큰돈을 벌기도 했고요. 그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
엄마에 대해 전혀 모르는 타인으로부터 ‘엄마에 대한 신박한 해석’을 듣고 나니 이상하게도 엄마에 대한 분노가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그 당시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을 한 대가(결혼을 늦은 나이까지 미루었으며, 결혼 후에 자식들을 남겨놓고 돈 벌러 떠나는 행동 등)로 외가 쪽이나 친가 쪽이나 공공의 트러블메이커였는데, 엄마에 대한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아니, 그동안 엄마를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마음마저 들게 되었다. 사실은 내 감정들을 지켜내기 위해, 정당하게 외면하기 위해 엄마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은 찾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늦은 나이에 결혼을 선택한 것이며, 어린 두 딸을 남겨두고 개인적은 삶을 쫒고자 타 지역으로 떠난 행동들, 그리고 일정 부분 성취를 해낸 부분들은 정말 대단한 점이에요. 옆에서 지켜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만 있었더래도 참 좋았을 텐데, 너무 아까운 사람이에요.‘
생각해 보니 엄마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사람이 맞긴 했다. 요즘은 30대 후반에 결혼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고, 돈이 최고인 시대가 아닌가. 그리고 남편이 돈을 못 벌면 여자가 나서서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하필 54년생인 엄마는 그런 선택을 한 번도 지지받아 본 적이 없었다. MZ세대의 정신세계를 탑재한 엄마가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생각이 너무 당연시되던 시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이지 처음 해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핏줄은 흘러간다
가끔 딸을 쳐다보고 있으면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내가 엄마를 닮았고, 내 딸이 엄마를 닮았으니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어쩌면 나도 엄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를 닮은 내 딸의 모습이 귀엽고 지켜주고 싶고 사랑스러우니까. 엄마의 용맹함은 나를 타고 내 딸로 이어질 것이다. 엄마는 한 줌 재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노래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엉켜있던 엄마와의 실타래가 탁 풀렸다. 어떤 엄마여야 하는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박제될 뻔했던 엄마가 비로소 내 기억 속에서 해방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