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공공공간 산책 이야기 # 1
아침 일찍 벤에 이삿짐을 가득 싣고 뉴욕으로 출발했다. 2년간의 필라델피아 생활을 뒤로하고 덜컹이는 이삿짐 차 안에서 내내 설레는 맘을 눌러 담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인 틈바구니에 나도 곧 그 끼어들어 갈 것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현대 미술품 같은 도시 생활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안타깝게도 도착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부풀었던 기대는 펑하고 사라졌다.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생활만 이어졌고, 처음 해보는 직장 생활도 녹록하지 않았다. 고독한 시간으로 하루가 가득 찼다. 즐거워야 할 점심시간도 이상하기만 했다. 사무실 사람들은 각자 알아서 짧게 밥을 해결하고 점심수다도 없이 오후 일과를 이어갔다. 정오가 지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빈 사무실에 혼자 남아 점심시간이 되었음을 알아채면 넓은 들판에 혼자 서 있는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독 철저하게 혼자 밥 먹는 것을 고수하던 직장동료와 같이 외근 나가게 되었다. 말을 트고 나니 새침데기 같던 직장동료도 일리노이에서 뉴욕으로 상경한 마음 여린 소녀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에게 점심시간은 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휴식 시간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녀는 지친 심신을 스스로 달래는 방법을 알았고, 실천했던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 어쩔 줄 몰라하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외로운 점심시간도, 혼자 보내는 일과도 나를 위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점심을 맛있게 먹을 장소를 하나씩 골라 보고, 사무실 주변 예쁜 가게를 찾아보며 콧바람을 쐬었다. 도시 전체가 관광지나 마찬가지였던 맨해튼에서 아는 곳을 하나씩 늘려갔고 숨을 고르고 싶을 때마다 찾는 공간도 생겼다. 점차 쉬는 시간, 출퇴근 시간, 주말에도 산책을 하며 동네 구경을 했다.
그렇게 산책하는 법을 터득하면서 매일 생기는 불편한 마음을 푸는 방법도 찾았다. 도시 곳곳에는 보석 같은 공공공간이 있어 쉽사리 싫증 나지도 않았다. 좁은 골목길, 커뮤니티 정원, 도심 공원, 프로미나드 같은 공공공간을 장난감 코너에 간 아이처럼 정신없이 돌아보았다. 산책은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가 되었고, 도시를 거닐며 세상을 이해하는 눈을 키웠다.
뉴욕에 살았던 6년 동안 산책길을 큐레이팅해보고, 매번 가는 장소에서 다른 모습을 찾아보며, 보통날의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었다.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은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고, 공간의 뒷이야기를 찾아보며 산책에 재미를 더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