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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ive Lore Wild Apr 04. 2023

벚꽃 보다는 진달래

서울 여행 




북악산 산책로 

오랜만에 친구와 등산 약속을 잡았다. 말은 등산이었지만, 우리의 등산은 둘레 길 산책 수준이다. 친구가 좋아하는 경로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나를 부암동으로 불렀다. 버스를 타고 부암동 주민센터에서 내려 우리는 북악산으로 올라가는 입구로 향했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반대편으로 가면 인왕산이 나오고, 이 날 우리는 북악산으로 둘레길을 따라 삼청공원으로 내려가는 경로를 선택했다. 산에서 내려와 삼청동에서 맥주 한잔 할 상상을 하니 발길이 가벼웠다.  


아직 덥지도 그렇다고 너무 춥지도 않은 등산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전망대에서 앉아서 김밥을 먹으면 약간 쌀쌀하고, 계단을 오르다 보면 살짝 더워지는 날씨였다. 올해는 작년보다 벚꽃도 이주일 정도 빨리 핀다고 하니, 평년보다는 따뜻한 날씨일 것이다. 봄이 너무 짧지 않기를 바라면서 돌길을 따라 올랐다. 

정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짜여진 돌 바닥만 보고 걸으면 이전 한양으로 돌아간 것 같았고, 성곽 너머로 눈을 돌리면 도심지가 보여 이곳이 서울이구나 싶었다. 차 안 네비게이션에서 나오는 한양도성 녹색 교통지역이라는 알림 말은 뜬금없었지만, 성곽을 따라 걸으니 도성이라는 말도 어느새 가깝게 느껴졌다. 정상에 다다르면 소나무가 하얀 돌 바닥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고 노랗게 핀 개나리가 겨울이 끝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리막길을 골라 계속 걸었다.   


이 맘 때, 산에 가면 분홍 빛 진달래가 유독 눈에 띈다. 산등성이 보다는 계곡으로 내려가는 경사면에 피어 있다. 메마르다 못해 푸석푸석해진 누런 낙엽에 대비되는 떼 지어 피어 있는 진달래는 이목을 끈다. 바람에 꽃잎이 다 날아가 버릴 듯 연약해 보여도, 쉽게 떨어지지 않고, 조용히 산속에 진한 분홍빛 색감을 더했다.  

진달래와 철쭉이 헷갈린다면 꽃 주위에 초록 잎이 있는지 확인해보면 된다. 이파리가 있다면 철쭉이다. 철쭉보다 먼저 피는 진달래는 이파리 없이 꽃만 불쑥 피어난다. 대략 벚꽃 피기 일주일 전쯤 진달래가 만개한다. 누런 바탕에 피어나기 때문인지 진달래는 철쭉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게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진달래가 더 좋다. 


북악산 산책로 


등산 다녀오고 한주가 지났다. 경의선 숲길 벚꽃 구경을 하던 중 헬리콥터가 머리위로 쉬지 않고 두 방향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이상했다. 작년 봄, 헬리콥터가 바쁘게 움직이던 날 관악산에서 불이 난 일이 생각 났다. 혹시나 검색을 해보니 인왕산에 불이 났다는 속보가 뉴스피드에서 올라와 있었다. 하루를 꼬박 끄고 불은 잡혔지만, 임야 14 헥타르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문득 버석버석한 숲에서 보았던 진달래가 떠올랐다. 진달래가 피는 때는 어쩌면 산에게는 제일 위험한 시기인지 모르겠다. 이 기간만 잘 보내면 곧 봄비가 내릴 터이지만, 꽃잎만 가녀리게 매달린 진달래처럼 아슬아슬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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