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입체를 만드는 원리

by 고유동

평면과 입체


종이 위에 정사각형을 그려보자. 네 개의 선이 만나 평면이 된다. 이제 같은 크기의 정사각형을 하나 더 그리고, 두 정사각형의 꼭짓점을 선으로 연결해 보자. 그러면 정육면체가 된다. 평면 두 개가 만나 입체가 되었다.


서평도 마찬가지다. 질문 하나로 책을 읽으면 평면이 생긴다. 질문 두 개로 책을 읽으면 입체가 생긴다. 그런데 평면 두 개를 그냥 나란히 놓는다고 입체가 되지는 않는다. 연결해야 한다. 두 평면 사이에 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 장에서는 두 질문이 어떻게 연결되어 입체를 만드는지, 그 원리를 살펴본다.



거리가 깊이를 만든다


사람의 눈은 약 6센티미터 떨어져 있다. 이 거리가 중요하다. 왼쪽 눈이 보는 세상과 오른쪽 눈이 보는 세상은 미세하게 다르다. 뇌는 이 차이를 계산해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가까운 물체는 두 눈에 많이 다르게 보이고, 먼 물체는 거의 비슷하게 보인다. 그 차이의 크기가 곧 거리 정보가 되는 것이다.


만약 두 눈이 같은 위치에 있다면 어떨까. 차이가 없으니 깊이도 없다. 세상이 평면처럼 보일 것이다. 반대로 두 눈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면 어떨까. 차이가 너무 커서 하나의 상으로 합쳐지지 않는다. 어지럽기만 할 것이다. 적절한 거리가 핵심이다. 서평의 두 질문 사이에도 거리가 있어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차이가 없고, 너무 멀면 연결되지 않는다.


“이순신은 왜 외로웠는가”와 “이순신은 왜 고독했는가”. 두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같은 질문이다. 거리가 없다. 이 두 질문으로 서평을 쓰면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된다.


“이순신은 왜 죽음을 각오했는가”와 “조선시대 수군의 편제는 어떠했는가”. 두 질문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다. 하나는 내면을 향하고 하나는 제도를 향한다. 연결점을 찾기 어렵다. 억지로 연결하면 부자연스러워진다.


“이순신은 왜 죽음을 각오했는가”와 “이순신의 죽음을 원하는 적은 누구인가”. 이 두 질문은 적절한 거리를 가진다. 하나는 안을 향하고 하나는 밖을 향하지만, 둘 다 ‘이순신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축을 공유한다. 다르되 연결할 수 있다.


축이 연결을 만든다


적절한 거리를 가진 두 질문에는 공통의 축이 있다. 축은 두 질문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다. 축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두 질문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단어나 개념을 찾으면 된다. “이순신은 왜 죽음을 각오했는가”와 “이순신의 죽음을 원하는 적은 누구인가”에서 공통 단어는 ‘이순신’과 ‘죽음’이다. 이 중 더 핵심적인 것은 ‘죽음’이다. ‘이순신’은 주어일 뿐이고, ‘죽음’이 두 질문의 내용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보자. 『과학산문』 서평에서 두 질문은 “물리학자의 시선은 무엇을 향하는가”와 “천문학자의 시선은 무엇을 향하는가”였다. 공통 단어는 ‘시선’이다. 두 질문은 서로 다른 사람을 향하지만, 둘 다 ‘시선’이 무엇을 향하는지 묻는다. 이 공통의 축이 있기 때문에 두 시선이 어디서 만나는지 물을 수 있다.


방향이 긴장을 만든다


축이 연결을 만든다면, 방향은 긴장을 만든다. 같은 축 위에서 같은 방향을 향하는 두 질문은 긴장이 없다. “이순신은 왜 슬펐는가”와 “이순신은 왜 괴로웠는가”. 둘 다 이순신의 내면을 향한다. 둘 다 부정적 감정을 묻는다. 방향이 같다. 긴장이 없으니 깊이도 없다. 긴장은 방향이 다를 때 생긴다. 안과 밖. 과거와 현재. 나와 타자. 원인과 결과.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두 질문이 하나의 축 위에서 만날 때, 그 사이에 긴장이 생긴다.


긴장이 왜 중요한가. 긴장이 있어야 ‘면’이 생기기 때문이다. 점 하나는 위치만 있다. 점 두 개를 이으면 선이 된다. 선은 길이가 있다. 그러나 선 두 개가 평행하면 면이 생기지 않는다. 선 두 개가 교차해야 면이 생긴다. 교차점을 중심으로 공간이 펼쳐진다.


서평도 마찬가지다. 질문 하나는 점이다. 질문 두 개가 같은 방향을 향하면 선이 된다. 길어지기만 할 뿐 넓어지지 않는다. 질문 두 개가 다른 방향을 향하면서 하나의 축 위에서 만나면, 그 교차점에서 면이 펼쳐진다. 이것이 점선면 서평에서 ‘면’이 생기는 원리다.



교차점에서 주제가 태어난다


두 질문이 만나는 교차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가. 『칼의 노래』 서평으로 돌아가 보자. 첫 번째 질문 “이순신은 왜 죽음을 각오했는가”에 대한 주관적인 답은 이렇다. 이순신은 싸워서 이겨도 돌아갈 곳이 없다. 조정은 그를 의심하고, 임금은 그를 시기한다. 승리는 그의 것이 아니라 임금의 것이고, 패배만이 온전히 그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삶 쪽을 이미 포기했다.


두 번째 질문 “이순신의 죽음을 원하는 적은 누구인가”에 대한 주관적인 답은 이렇다. 왜군이 그를 죽이려 한다. 조정이 그를 죽이려 한다. 명군이 그를 죽이려 한다. 심지어 그의 병든 몸도 그를 죽이려 한다. 사방이 적이다.


두 답을 겹쳐보면 교차점이 보인다. 안에서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 밖에서 죽음을 향해 밀려나는 사람. 방향은 다르지만 도착지는 같다. 이순신의 죽음은 안과 밖이 공모한 결과다. 바로 이 교차점에서 주제가 태어난다. “거대한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지 않고 무의미 자체를 살아내는 것.” 이것은 첫 번째 질문만으로는 나오지 않는 답이다. 두 번째 질문만으로도 나오지 않는다. 두 질문이 만나는 지점에서만 보이는 풍경이다.


교차점에서 태어난 주제는 두 질문을 포괄하면서도 두 질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더 높은 곳에서 두 질문을 내려다본다. 이것이 ‘면’이다. 점과 선이 만나 펼쳐진 새로운 차원이다.


점, 선, 면


이제 점선면의 의미가 분명해졌다.


점은 첫 번째 질문이다. 책을 향해 던지는 첫 번째 시선. 이 시선이 닿는 곳에서 첫 번째 해석이 생긴다. 아직은 하나의 위치일 뿐이다.


선은 두 번째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과 다른 방향에서 책을 향해 던지는 두 번째 시선. 이 시선이 닿는 곳에서 두 번째 해석이 생긴다. 이제 두 점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면은 두 질문이 만나는 자리다. 첫 번째 해석과 두 번째 해석이 겹쳐지는 곳. 여기서 두 해석을 포괄하는 더 큰 해석이 태어난다. 평면이 입체가 되는 순간이다.


점선면 서평은 이 세 단계를 순서대로 밟는다. 점을 찍고, 선을 긋고, 면을 펼친다. 독자는 이 과정을 따라가면서 서평 쓴 사람의 시선을 함께 경험한다. 단순히 결론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함께 걷는다. 그래서 점선면 서평은 설득력이 있다. 독자가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입체는 왜 강력한가


평면적인 서평과 입체적인 서평의 차이는 무엇인가. 평면적인 서평은 하나의 주장을 편다. “이 책은 이런 책이다.” 독자는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 선택지가 둘뿐이다. 반면 입체적인 서평은 풍경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이쪽에서 보면 이런 것이 보이고, 저쪽에서 보면 저런 것이 보인다. 두 풍경이 만나는 곳에 이런 것이 있다.” 독자는 그 풍경 안으로 들어간다. 동의와 비동의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평면적인 서평은 닫힌다. 결론이 나오면 끝이다. 더 생각할 것이 없다. 반면 입체적인 서평은 열린다. 결론이 나와도 끝이 아니다. 독자는 서평이 보여준 두 시선 외에 또 다른 시선을 상상할 수 있다. 세 번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서평이 대화의 시작이 된다.


서평은 책과 독자 사이에 놓인 다리다. 평면적인 다리는 한 방향으로만 건널 수 있다. 입체적인 다리는 여러 방향으로 건널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많은 사람을 책으로 이끌 수 있을까.


다음 장에서는 좋은 점선면을 설계하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세 가지 원칙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자.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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