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 컨택트
내 인생의 이야기
같은 페이지를 몇 번째 읽고 있는지 셀 수 없다. 예약자 명단으로 빠르게 옮겨 갔던 내 동공은 다시 책으로 돌아온 후 한 없이 느려진다. 18년이 넘는 시간 동안 6개월의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작년부터는 한 종목이 추가됐다. 지금쯤 누군가는 눈을 홉뜨겠지...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 죽는다는 점에서는 시한부다. 우연의 질병으로 맞는 필연의 죽음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처럼 못 본 척하는 그 희미한 죽음의 냄새.. 족히 200은 넘을 기세로 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부여잡는다. 이쯤 되면 제5도살장의 저 높은 곳 트랄파마도인이 다독거릴 타이밍이다. 뭐, 그런 거지.
그래.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SF계의 철학자 테드 창이 창조한 삶과 죽음, 인간의 의미가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언어학자 루이즈가 외계 지성과의 조우를 통해 맞이하는 인식의 변화는,
외국어를 배운 후 경험하곤 하는
언어 습득으로 인해 바뀌는 사고 체계와
끝을 아는 시작에 대한 설렘과 고뇌를 보여준다.
김영하작가는 '미래기억'이란 어휘로 표현했다.
여덟 개의 단편. 중편들 중 내 마음을 흔드는 이야기는 단연코 외계생명체-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한 후 세계관이 달라지는 언어학자 루이즈의 <네 인생의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단다. 자주 그 생각을 해보곤 해. 이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해서도. 152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230)
일단, 눈물 한 바가지.
이 이야기의 주제(라는 것이 있다면)를 단적으로 요약한 글로는,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 5 도살장>의 출간 25주년 기념판 저자 서문에 나오는 구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우리가 미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애를 태우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내 입장에서는 미래를 기억하는 일 따위는 식은 죽 먹기다. 연약하고 의심할 줄도 모르는 나의 갓난애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나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이미 다 자란 어른이기 때문이다." 431)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
● 어의 문자
영화 컨택트에서는 표의 문자 : 음이 없이 문자에만 의미가 담겨 있는 문자. 방향성이 없는 비선형적 언어.
● Sapir-whorf 가설
언어결정론 :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
● 페르마의 원리
빛이 수면을 통과해 굴절하는 모습.
인간의 사고는 인과관계이나 빛의 입장은 목적론적 사고.
고로 목적론적 의식체계는 시간을 통달하게 한다.
● nonzero-sum game과 컨택트 속 HANNAH라는 회문성 이름까지 보고 나면
아... 깨달음이 올락 말락.
이 대목에서 우리의 친절한 <떨림과 울림> 김상욱 교수는 물체가 모든 가능성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최선의 결과를 찾아가듯이 작용한다는 해밀턴 역학으로 부연 설명을 해준다.
깨달음이 오는 대신 눈물 쏙!
미래를 다 아는 존재에게 현재를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소설에서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대화가 되었든 헵타포드는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 수행문의 효용
세상은 수학으로 굴러간다. 수학에 의도 따위는 없다.
환기를 위해 한석규와 김서형이 연기한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봤다. 말기 암환자는 먹지 못 한다. 그러나 먹을 수 있는 것을 기억해 낸다. 죽음이 임박한 이에게 지금 무엇을 먹는가가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죽을 걸 알면서 살아내야 하는 존재... 어떻게 끝날지 아는 존재. (김서형의 극 중 이름은 '정다정'! 소름 돋는 회문식 이름이다)
다시 눈물 두 바가지.
얼핏 무관해 보이는 어린이 책 <버스가 좌회전했어요> 중 잎싹은 틀렸어 편을 보다 결국 오열했다.ㅠㅠ
잎사귀는 행복하지 않아. 잎사귀는 엄마인데 예쁘게 낳은 꽃을 먼저 보내 줘야 하잖아.
그래도 마냥 슬프기만 했던 건 아닐 거야. 다음의 꽃을 위해 아름답게 지는 순간까지 함께 했으니까. 79)
루이즈에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모든 이들에게 주는 이 뜨거운 위로에 꺼이꺼이 눈물 세 바가지.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다.
내 인생의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
그리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
크림북클럽의 책에 맞춰 읽은 각각의 이야기들.
훌륭한 이 책들의 놀랍도록 유기적인 관계는 심오한 목적론들을 걷어차버린 우연의 희열로 남았다.
우리는 고생할걸 알면서도 여행을 떠나고
헤어질걸 알면서도 만난다. 죽을걸 알면서도 굳이굳이 삶을 선택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수행하지 않으면 기능하지 않는다.
영화 컨택트의 제목은 ARRIVAL
루이즈에게 도착한 건 외계인뿐만이 아니었다.
● 도서 :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 영화 : 컨택트- 드니 빌뇌브
Cinema Reading Enjoy Artistic
Moment 크림북클럽 2023년 02월
테드 창을 어딘가에 가둬 놓고 군만두든 뭐든 주면서 글만 쓰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부록 제5도살장 이야기>
드레스덴 참사, 대단히 비싸고 꼼꼼히 계획된 그것은 너무도 무의미했다.
마침내 이 지구상의 단 한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어떤 이득을 취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나는 이 책을 썼고, 이 책은 내게 많은 돈과 명예를 안겨주었다. -커트 보니것
뭐, 그런 거지.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제5도살장》을 읽어야겠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제5도살장》을 읽을 수밖에 없다.
- 《타이탄의 세이렌》
- 《제5도살장》을 먼저 읽었어야 하나?
- 《제5도살장 그래픽 노블》
- 《제5도살장》을 읽ㆍ 어ㆍ 야 ㆍ겠ㆍ 다
so it goes
문학동네에서 겁나진짜완전근사한 양장을 만들어 주길 기다리며.
딱한 보니것 양반.
그 참사서 이득을 취한 건 당신뿐만이 아니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