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

멋진 신세계|토탈 리콜 - 질문이 제거된 세계에서의 기억과 섹스

by 무화


prologue



어느 델타+의 일기


아침엔 해독주스에 소마 반 알.
출근하면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소마 반 알.

점심엔 패스트푸드와 소마 반 알.
점심 후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소마 반 알.
퇴근 후엔 치맥과 소마 반 알.

잠들기 전에는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소마 한 알을 더 먹어야겠다.

오늘 낮,
아주 끔찍하고도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피부가 축 늘어지고
주름투성이인 어떤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남자.
그 남자는 늙은 여자가 죽자 흐느껴 울었다.

왜 우는지 궁금해할 틈도 없이
나는 점심에 먹은 것을 게워냈다.

어머니라니.
지금도 속이 좋지 않다.

신도 없고, 책도 없고, 가족도 없는
신세계인의 하루.

알파의 세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델타+의 하루.

엡실론보다는 낫다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하루.

나의 하루.

너의 하루.
그리고 우리의 하루.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 필립 k. 딕





기억은 현대의 소마인가


이 세계들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게 만든다. 폭력도, 금지도, 노골적인 검열도 필요 없다.
불편함이 생기기 전에 그것을 중화하는 장치들이 이미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정은 미덕이 되고, 균열은 사유의 계기가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 된다. 이 체계의 중심에는 늘 하나의 질문이 있다. 고통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가 아니라,


고통이 어떻게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소마


『멋진 신세계』 에서 소마는 약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감정을 억누르는 진정제가 아니다.

소마는 고통이 사유로 번역되는 시간을
삭제하는 기술이다.

슬픔은 느껴지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불안은 발생하지만 언어가 되지 못한다.

감정은 즉각적으로 평탄화되고,
머무르지 못한 감정은 기억이 되지 못한다.

기억되지 않는 것은 질문을 낳지 않는다.
그래서 이 세계에는 불행이 없다.

그러나 불행을 통과하며 형성되는
자기 인식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야만인 존은 이 체계의 오류다.
그는 쾌락을 거부하고, 고통을 감내하려 하며, 사랑이 수반하는 상처를 선택한다.

존이 요구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불행해질 권리였다.

그러나 소마로 유지되는 사회에서 그 권리는 이해되지 않는다. 존의 고통은 존엄이 아니라 치료 실패 사례로 분류된다.




기억


필립 K. 딕의

「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 에서
소마는 더 이상 알약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기억이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퀘일은 현실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더 나은 기억을 선택한다.

그 기억 속에서 그는 특별하고,
의미 있으며,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여기서 기억은 회상이 아니다.
현실을 견디기 위한 위안도 아니다.

기억은 현실을 대체하는 장치다.

경험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설계되고, 자아는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편집된다.

소마가 감정을 마비시켰다면,
기억은 현실 자체를 무력화한다.

무엇이 진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삶이 더 이상 견딜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퀘일의 혼란은 기억의 진위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상태에서 발생한다.




섹스


섹스 역시 이 체계 바깥에 있지 않다.

『멋진 신세계』 에서 섹스는 자유롭다.
그러나 그 자유는 해방이 아니라 관리의 결과다.


모두는 모두의 것



이 문장은 관용이 아니라 안정 장치다.
독점, 사랑, 질투는 사회 불안 요소로 분류되어 사전에 제거된다.

섹스는 감정을 깊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이 어느 한 사람에게
머무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순환시킨다.

그래서 이 세계의 섹스에는 상처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될 이유도 없다.


《토탈 리콜》 의 세계에서도

친밀성은 현실의 관계가 아니라 기억과 환상의 일부로 편집된다.

섹스는 경험이 아니라 설계된 감각이 된다.

욕망은 강렬하지만 그 욕망은 언제나 안전한 서사 안에 있다. 몸은 과잉되지만 살은 비어 있다. 살의 접촉은 있지만 체온은 없고, 쾌락은 있지만 상처는 없으며, 관계는 있지만 책임은 없다.




대체된 인간


결국 두 작품이 공유하는 구조는 분명하다.


소마는 감정을 대신하고,
기억은 현실을 대신하며,
섹스는 사랑을 대신한다.


이 대체가 완성될수록 인간은 더 안정된다.
덜 흔들리고,
덜 고통스럽고,
덜 질문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기억은 현대의 소마인가.

고통을 없애기 위해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견딜 필요 없게 만들기 위해 선택되는 것이라면,


기억은 이미


가장 세련되고,
가장 효과적인,


소마일지도 모른다.






● 도서 : 멋진 신세계&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 영화 : 토탈 리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