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에 대하여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재발행
전두엽의 기능이 일시 정지된 이들은 종종 말의 진위나 진정성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채ㅡ심지어 의도조차 모른 채ㅡ 과하게 '솔직함'을 표방한 폭력을 행한다. 그럼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대체로 이런 사고 과정을 생성한다.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니 마음도 충분히 이해해.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니 입장에선 뭐 그럴 수도 있지.
크세르크세스처럼 나는 관대하다를 시전 하기. 근데 기분은 jot같네?
그렇다. 내 기분이 zot 같은 이유는 그들이 개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 BULLSHIT ]
직역하면 쇠똥. 물론 실제 의미는 개소리, 헛소리, 좆같은, 허튼소리, 이런 ㅆ발, 말도 안 돼, 뜨거운 똥, 빈 똥, 영양가 없는 덩어리.
개소리는 인정 욕구, 자기 상승 욕구, 자기 지위를 침탈당하고 싶지 않은 욕구로 구성된다. 진짜 욕구를 드러내는 건 모냥빠져 싫은데 욕구를 가진 나의 감정 또는 느낌은 인정받고 싶어 '본질'은 쏘옥 빼버린 채 '이상한' 이야기를 '진심'어리게 지껄이는 것. 이를테면이라고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ㅡ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가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개소리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현혹되지 않을 정도의 지각은 갖추고 있다고 꽤 자만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개소리란 도대체 무엇인지, 왜 그토록 개소리가 많은지, 또는 개소리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등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7)
《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그러니까 개소리와 거짓말이 뭐가 다르냐고?
거짓은 참에 기반하기 때문에 날카롭고 정교하다. 진리, 진실을 두려워하고 어찌 됐든 진실과 같은 선상에서 등을 지고 있는 상황인 거다. 그런데 개소리는 진리에 무관심하다. 당연히 정교함 따위 없다. 팩트 체크?
무관심, 노관심.
내가 겪어 본 '개소리 전문가' 들도 그랬다.
이제 진짜 이를테면,
현학적이고 심오한 단어들을 많이 쓸 뿐만 아니라 이것들을 묘하게 결합시켜 해석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때 발생한다.
나는 이해해보고 싶은 것이다. 집중하고 들이 파고, 그러다 정들고. 아, 이건 중요한 거지. 라고 뇌는 인식한다. 개소리가 멋진 것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나'라는 1인칭 단수대명사를 즐겨 쓴다는 점이다. 때로 거만해 보이는 이 대명사는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제가'보다 훨씬 솔직해 보이는 것. 진심 어린 개소리를 우리는 진심이니까 선하다, 또는 진심이니 좋은 거지. 진심 어리게 이렇게 성실하게 개소리를 하다니 등드르등
이건 '좋은 것'으로 저장 완료한다.
바로 이게 거짓말보다 위험하고 불온하기까지 한 개소리에 관대한 이유다.
거짓은 나를 기만한다 느끼게 하지만 개소리는 그러는지 어쩌는지 저쩌는지 판단불가. 인식을 흐린다. 브레인 포그 같은 상황에 던져 넣는다.
프랭크퍼트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잘 모르는 이 개소리ㅡ심지어 늘 하면서도ㅡ의 본질 비슷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결국 이 글도 개소리다. 프랭크퍼트가 한 말들도 일부는 개소리고.
내가 쓴 글들 태반이 개소리(일 수 있)다.
real과 솔직함으로 재단하면 내 이야기는 없는 셈이다.
어디서 어떻게 진리를 찾을 것인가.
개소리는 솔직함을 배제한 채 떠드는 진심 어린 허세다. 진짜 욕구를 감추는 것.
손바닥만큼 작고 얇은 이 책은 개소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고, 나 너 우리 모두 개소리 전문가이자 동시에 개소리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앞으로 자문할 땐 이 문장을 떠올리겠다.
'이봐 스내그, 성경에는 무엇이 있는가?
성경의 각 권들은 무엇인가?
그 이름들을 대보라, 나에게 개소리를 하지 말고.'
나 지금 겁나 공허하거든.
개소리 전문가에게 침식당했던, 또는 침식당하는 중인 지금 나 또한 이제 어엿한 개소리 전문가가 되어 개소리를 설파한다. 그나마 고무적인 건 자기 검열을 때때로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 실재와 삶의 방식이 유리 돼가는 이 시점. 우리는 개소리에 대하여 무얼 떠들어야 하는가.
하... 또 개소리했네.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는 시체를 사랑하는 이상 성욕이나 시체와 성관계를 하거나 훼손하는 성도착증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현재의 생명력을 빼앗는 행위. 자신에게 전혀 저항하지 않는 상대를 지배하는, 말하자면 일종의‘죽은 것’을 사랑하는 파시즘도 네크로필리아다. 공동체 전체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것이다.
파시즘은 대단히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개소리를 설파한다.
포스터부터 진한 개소리 냄새가 나는 영화가 있다.
● 도서 : 개소리에 대하여
● 영화 :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