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몸빼바지는 힘이 세다
차갑고 들큰한, 또는 비릿하고 날카로운 냄새를 몰고 온 이모가 첫 번째 몸빼바지를 벗는다. 지난한 과거가 후드득 튕겨나간다. 두 번째 몸빼바지를 벗는다. 막막한 미래가 주저앉는다. 세 번째 몸빼바지를 벗는다. 노여운 현재가 꿈틀댄다. 네 번째 몸빼바지를 벗는다. 아찔한 역사가 쌓인다. 다섯 번째 몸빼바지를 벗는다. 쪼그라들었던 해방의 감격에 이모는 웃는다. 장대한 쇼를 관람한 나는 박수는커녕 관람료도 지불하지 않은 채 이 광경을 주시한다. 몇 번째 몸빼바지의 고랑들 사이에 군고구마가 빠져있을지 살핀다. 뚱뚱한 전대에서 삐져 나온 오뎅 냄새의 뭉치들을 풉! 하고 잡아든 그녀의 손끝이 애환과 오욕의 춤을 춘다. 그 속에 들어앉아 있던 건 누구였을까.
확실한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 명제 자체가 확실하므로 모호함 속에서 확실함을 찾아 헤매는 나는 바보임이 확실하다. 진릿값을 논할 필요는 없다. 삶의 비극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뾰족하게, 때론 불룩하게 돌출된 그 '무엇'으로 발현되므로.
예술은 삶의 비극을 맥락 속에 두며 통제할 수 있다. 질서와 맥락을 부여하고 반복적으로 말하게 함으로써 내화시키거나 휘발시킨다. 카오스 속에 코스모스를 주며 견딜만하게 한다.
때로는 마임을 하듯, 춤을 추듯 언어로 휘발되지 않게 영원히 각인시키기도 한다. 그 속에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가 있다.
중요한 것은 시선이다. 나로 볼 것이냐, 오스카로 볼 것이냐.
'단치히'라는 듣보잡 국가의 북 치는 오스카. 난쟁이, 꼽추, 예수, 누드모델, 조각가, 등드르등
(기함을 토하게 하는 N잡러다!)을 전전하다 결국은 작가가 되는 오스카. 1인칭 나와 3인칭 오스카로 시점을 전환하며 세계를 보는 객관성을, 질서를, 맥락을 붙잡고자 한 오스카.
오스카는 왜 양철북을 두드리는가? 를 필두로 말대가리 속 장어 떼만큼이나 꽉 찬 질문들로 양철북은 질문들을 대량 생산해 낸다. 소설의 역할이ㅡ과연 있다면 ㅡ무엇인지에 골똘해보면 양철북 은 매우 훌륭한 매개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로테스크한 결합의 결정체인 오스카는 타협과 굴종의 착각 속에 빠진 독일 시민들. 나아가 소시민적 일상의 배후에 있는 우리들의 야만성. 즉 '일상 속의 파시즘'을 폭로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그래서 뭐 어떻게 되는 건데?를 내뱉지 못하게.
왜?라는 질문으로 대단히 유효하게 이 소설을 관통하며 우리를 끌고 간다. 양철북의 효용성은 구불구불 똬리를 튼 장어들만큼이나 폭력적이고 참혹하며 또 신랄하다. 허나.
귄터 그라스가 이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는 모른다. 이 장대한 이야기를 마술적 리얼리즘으로밖에 직조할 수 없었던 이유를 나는 모른다. 정확하게 모르므로 나는 모른다. 양철북으로 세계사를, 지리를, 인간을, 역사를... 결국 모른다. 모른다. 정말 모른다.
질문은 언제까지고 유효할 것이다.
전후세대의 무력함과 자조가 짙게 밴 이야기들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쓸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양파를 썰며 같이 울어야 하는 인간. (그 와중에 그 많은 양파를 어찌 처리했을지 궁금한 Tㅡ 또 그 와중와중에 눈물이 흐르면 슬퍼진다 하는 남편) 청중이 필요하고 읽어주는 이들이 필요한 인간.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생각하면 된다.
'스님이 그냥 스님이듯 시인은 그냥 시인이다. 제 좋아서 하는 일이니 굳이 존경할 필요도 없고 귀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 장정일의 이 말이 우리의 독서생활ㅡ허. 거 참 거창하네ㅡ에 진입장벽의 무가치함을 설파해 준다.
오스카의 할머니 콜야이체크의 네 겹 치마는 나의 쌀쌀맞은 몸빼바지 이모를 소환해 냈다. 그녀의 인생을 떠올려준 것만으로도 이국의 작가 귄터 그라스가 쓴 일 천 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는 소임을 다했다.
의식은 바위를 굴려 올리는 일상적 행위들이 정지되는 시간, 숨을 고르는 순간에 찾아온다.(고 카뮈가 말했다) 이 돌연한 방향 전환이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반성의 은유가 된다고. 이 멋진 양반의 말씀에 무한동의한다.
양철북을 읽다가 이거 대체 뭐여? 한숨을 후하고 내쉬며 책갈피를 끼운 순간.
우리의 의식은 정지된 게 아니라 깨어났으며 작은 파시스트가 되지 않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서서히 不知不識 간에
이모의 몸빼바지는 무엇을 품고 있었던가.
● 도서 : 양철북 - 귄터 그라스
● 영화 : 양철북 - 폴커 슐렌 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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