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몬|에에올|붓다
소서가 있는 라떼컵을 샀다. 홈에 들어맞게 컵을 내려놓으면 흔들리며 안착한다. 달그락. 뭐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컵이 도구이자 영감이자 상징이 되는 순간이다.
지금 당신 앞에도 컵이 있다. 우리는 "이건 내 컵이야!"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컵은 흙, 물, 열, 사람의 노동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깨지고 사라진다. '내 것'도 아니고, '고정된 존재'도 아니다. 이 컵을 무상하고, 수많은 조건으로 생겨난, 그러니까 실체가 없는 존재(무아)라고 보면 어떨까.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붓다의 무아, 에블린의 멀티버스,
그리고 라쇼 몬의 진실
1. 진실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흔히 ‘진실’은 하나이며, 누구나 그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ㅡ혹은 착각ㅡ다. 그러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몬』『덤불 속』은 이런 믿음을 흔들어 놓는다.
같은 사건,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각자 완전히 다른 진술을 한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누구의 말이 진짜인가?
이 질문은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 허상인지를 보여준다.
2. 수많은 진실, 수많은 나
이 흔들리는 진실의 구조는 100년 후 등장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서 새롭게 변주된다.
주인공 에블린은 멀티버스 속 수많은 평행세계의 자신과 연결된다. 어떤 세계의 그녀는 요리사이고, 어떤 세계에서는 무술가이며, 또 어떤 곳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심지어 돌이 되기도.
대환장 파티에서 북치고 장구치던 에블린과 우리는 섬뜩한 명제와 만난다 “어떤 내가 진짜인가?”
3. 붓다의 무아와 ‘진실 없음’의 해탈
이 혼란을 관통하는 통찰이 있다. 무아(無我)
'모든 존재는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며, 그 안에 고정된 자아는 없다.'
으응?
즉, 나’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색.수.상.행.식의 오온, 즉 오감, 감정, 기억, 언어, 인식 등 조건들의 일시적인 조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뭐라고? 자아가 없다고? 그럼 지금 머리 뽀개지는 나는 뭔데!
자아가 없다면 자아가 인식하고 설하는 진실이라는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는것입니다아아. 얼얼하시죠.. 저도 핑핑 돕니다.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ㅡ고 보는 게 맞다ㅡ고로 진실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얽혀있는 자아가 아닌 관망ㅡ관조ㅡ하는 자아라면 가능할지도.
하지만 이 아리쏭한 통찰은 라쇼몬의 냉소와는 다르다. 붓다에게 무아란 허무가 아니라 자유다. 하나의 실체에 집착하지 않기에, 존재는 변화할 수 있고,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도?) 있다.
4. 에블린의 선택, 라쇼몬의 침묵
라쇼몬의 인물들은 진실의 파편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 끝엔 침묵과 방관, 혹은 인간 본성에 대한 냉소만이 남는다.
그러나 에블린은 다르다. 그녀는 무수한 가능성과 실패의 기억, 수많은 ‘나’의 분열 속에서도 한 가지를 선택한다.
나는 아무 의미 없을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사랑하겠어.
이 선택은 진실 너머에서 다시 태어난 자의 언어다. 진실을 쥐려다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쥐려는 집착을 놓고 타인에게 다가가는 행위.
붓다가 말한 무아의 자비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누가 범인인지, 뭐가 진실인지 이제 내려놓아요..흐흐
5. 진실은 ‘하나’가 아닌, ‘흐름’
라쇼몬의 인물들은 각자의 진실을 말했지만, 진실은 결코 하나로 수렴되지 않았다. 에블린은 무수한 자아 속에서 정체성을 잃었지만, 결국 관계를 선택함으로써 자유를 얻었다. 붓다는 실체 없는 자아, 실체 없는 진실을 꿰뚫어 보며 해탈의 길을 열었다.
이들은 모두 말하고 있다.
진실은 흐름이며, 조건이며, 깨달음의 과정이며. 음.. 그러니까
쥐려 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고.
자, 이제 결론
철학. zotto 모르지만
진실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 진실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는가
인간은 악하다.
그와 동시에 한없이 약한 존재다.
● 도서 : 라쇼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영화 : 라쇼몽 - 구로사와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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