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ad
남자는,
그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미 재가 된 것을 아이의 마음속에서 불로 피워 올릴 수는 없다 생각했다. 그런 이들이 있다. 내면의 잔허殘墟 가 너무나 광활하여 더 이상 뜨거워질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 얼어버린 마음.
사람은커녕 사랑을 믿지 않던 나는 이제 이 보이지 않는, 왜냐고 묻지 않고도 현존을 실감케 하는 생생한 감정을 믿게 되었다. 유전자의 힘이나 호르몬의 농간 따위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
어떤 나무라도 탄화되면 숯이 될 수 있다. 목질이 단단한 나무는 좋은 숯이 되고, 목질이 성기어 연한 나무는 전소되어 재가 된다. 남자는 자신을 완전히 전소된 재라 생각했지만 그는 재 ash가 아닌 숯 charcoal이었다. 무산소 환경에서 수분과 불순물이 없어진 순전한 탄소덩어리. 불을 운반하게 해주는 숯 같은 사람. 소년이 불이자 신이자 희망이자 사랑이라면 남자는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지속시켜 주는 바이오매스
(생태계 순환 과정을 구성하는 생물 Bio의 총 덩어리 Mass)
즉, 연료였다.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에는 철새처럼 멕시코로 날아가는 기이한 제왕 나비의 여정이 나온다. 그토록 힘겨운 비행을 하는 이유는 다음 세대를 위함이다. 그 속에는 사랑이나 희생이라는 텍스트는 끼어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환이라는 개념에 입각해 보면 퍽 아름다워진다. 숭고하기까지 하다.
담요로 싸인 남자는 흙으로 돌아가고 원자로 쪼개어져 소년과 함께 할 것이다. 우리가 무수한 존재들의 죽음에 슬퍼하지만은 않는 이유를 생의 유한함이나 자신을 위한 망각으로만 여기지 않는 건 죽음은 늘 탄생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계의 모든 사건들은 일련의 순환을 통해 동일한 순서로 영원히 반복된다는 니체의 영원회귀 보다 에너지는 생성되거나 파괴되지 않고, 단지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된다는 헬름홀츠의 에너지보존법칙에서 더 뜨끈한 위로를 얻는다.
선택할 수 있고, 이야기로 남겨둘 수 있으니까. 곁에 있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
《긴긴밤》의 노든,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제왕나비,
<Eternal Sunshine>의 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 같은 그들 삶의 빛나는 궤적.
그것이 신神이고 선善이다.
그러니 나는 너를 다시 만나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세계가 차콜빛이 된다면 내가 차콜이 되면 된다. 고사리가 되고, 참느릅나무가 되고, 덩굴손이 되고, 버섯이 되고, 도깨비바늘꽃이 되면 된다.
《THE ROAD》 Cormac McCarthy
좋은 문장 열네 개
신선한 표현 다섯 개
질문 다섯 개.
모두 스물네 개의 인덱스를 붙였지만 지금 옮겨 쓰고 싶은 문장ㅡ문단ㅡ은 이것이다.
한때 산의 냇물에 송어가 있었다. 송어가 호박빛 물속에 서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지느러미의 하얀 가장자리가 흐르는 물에 부드럽게 잔물결을 일으켰다. 손에 잡히면 이끼 냄새가 났다. 근육질에 윤기가 흘렀고 비트는 힘이 엄청났다. 등에는 벌레 먹은 자국 같은 문양이 있었다. 생성되어 가는 세계의 지도였다. 지도와 미로. 되돌릴 수 없는 것. 다시는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을 그린 지도.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는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되었으며, 그들은 콧노래로 신비를 흥얼거렸다. 323)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신의 숨이 그의 숨이고 그 숨은 세세토록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건네진다.
다양한 해석을 뒤로하고, 매카시는 이 작품을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떠나는 이야기”라고만 했다.
● 도서 : 로드 The road-코맥 매카시
● 영화 : 더 로드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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