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들 | Perfect Days
유리벽에 반사된 엷은 빛이 성긴 커튼 사이로 들어온다. 박명의 시간에 차가워진 발끝에 내려 앉는 새소리를 듣고 싶어 나는 눈을 뜨지 않는다. 손가락을 하나씩 펴보고 오른쪽 어깨를 만져본다. 빛과, 물기와, 공기를 감싸안은 온도와, 구름이 어디쯤 와있는지를 관자놀이 끝으로 감각하며 숨을 쉰다. 오늘은 나쁘지 않아.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은 수용에서 온다. 결핍이나 불완전함 속에서도 순간의 충만함을 발견하는 것. 관조하는 삶, 사색하는 삶. 통찰하는 삶.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다고 기러기처럼 소리치는.
아름답다. 낙관적 허무주의자인 나에게도 퍽 파고드는 텍스트들. 하지만
나는 히라야마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나에게 완벽한 날들이란 불편함과 혼란을 최소화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완벽한 날을 ‘사는’ 게 아니라, 충만하다고 믿고 유지하는 삶.
나무, 하늘, 빛 같은 ‘변하지 않는’ 피사체에 뷰파인더를 들이대며 균질성을 유지하려는 태도.
Perfect Days 라는 제목의 뜻은 영화 속 음악과 책, 빔 벤더스의 전작들을 톺아보는 사이 달라졌다. 이 제목은 완벽이라는 껍질을 덮어 쓴 불완전한 삶을 가리키는 반어적 장치다. 모든 것이 통제가능한 반경안에서 루틴대로 진행되길 원하는 히라야마. (는 숲속의 작은 식물을 굳이굳이 파와서 작은 도기분에 심고 자주색 식물등까지 켜가며 키운다. 맙소사! 요즘은 주백색도 있는데)
그런 그가 우연의 결과물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의 일련의 행위들을 보며 찍었던 물음표ㅡ특히, 뷰파인더를 아래로 내려 무작위 사진을 찍는 씬에 대한 궁금증ㅡ들은 이제야비로소마침내 해소되었다. 간택된 완벽한 결과물들만 그의 벽장속으로 입장한다. 그 과정은 성스럽게 보이기까지 하고.
눈을 직접 뷰파인더에 대면 피사체와 시선이 ‘직결’돼서 마주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런데 그는 그 순간을 피하고, 카메라와 물리적 거리·각도를 둔다. 이건 대상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습관, 즉 감정적 안전거리를 상징할 수 있다.
아래로 내려다보는 촬영 방식은 예전 필름 카메라에서 쓰던 습관이기는 하다. 피사체와 눈이 마주치지 않게 해주기 때문에, 관찰자는 노출되지 않고 대상은 방해받지 않는다. 히라야마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 — 참여하지 않고 관찰하는 태도 — 이다. 다만, 이건 겸손한 감각일 수도 있고, 깊이 들어가길 회피하는 습관일 수도 있다. 나쁘다는게 아니다.
뷰파인더를 들고 ‘구도를 맞추는’ 창작 행위가 의식처럼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돌. 구도자의 그것처럼 느껴졌던 순간 나는 조금 슬펐다.
매일 아침 눈뜰때마다 숨을 들이쉬고 길게 내뱉던 장면들. 그는 그렇게 매일 밤 죽고 매일 아침 다시 태어나 돌을 밀어 올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을 읽으며 히라야마를 자주 떠올렸다. 그의 불안을 다루는 이야기가 영화 Perfect Days다.
이번엔 어떻게 보이냐고 물었다.
음..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라고 대답했다.
수행하는 삶을 이어가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완벽한 날들》메리 올리버
《Perfect Days 》빔 벤더스
그의 삶은 구도자의 그것과 닮았다.
최소한의 물성을 취하고,
최소한의 언어를 발화하며,
최소한의 감정을 태운다.
회한과 과오없는 삶은 없다.
그만하면 이제 됐다. 빛을 찾으라.
없다면.
닦아내고, 윤을 내어 만들라.
그것조차 없다면.
'빛' 하고...낮게 읊조려보라.
한 장 씩 한 장 씩 쌓여 거대한 일렁임을 만들어 낼
빛이.
당신의 입술과 손끝에 묻어 있다.
히라야마 씨에게.
제 나라 독일로 돌아온 지금, 당신이 점점 더 그리워집니다.
당신의 조용한 존재감, 친근한 미소, 그리고 일에 대한 헌신은 제게 아주 소중해졌거든요.
당신의 파란색 유니폼과 작고 푸른 차가 그립습니다.
스카이트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당신의 아늑한 동네가 그립습니다.
밤에 파란 불이 켜진 당신의 작은 집이 그립습니다.
아침이면 골목을 쓸던 나이 든 어르신과 동네 신사에서 울리던 종소리가 그립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허구의 인물일지 몰라도 제겐 그야말로 실재하는 사람이 되었고,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이가 당신을 아주 많이 그리워하고 있을 겁니다.
제 아내 도나타와 저는 베를린의 일상 속에서도 항상 ‘코모레비’를 봅니다.
그 덕분에 당신을 생각하게 되고, 가끔 당신을 기억하며 ‘코모레비’의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 ‘코모레비’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합니다.
매번 이 ‘코모레비’ 덕에 나무와 잎새들, 바람과 빛에 감사하게 됩니다.
당신이 그걸 제게 가르쳐 주셨죠, 히라야마 씨.
당신이 그저 허구의 인물일 리가 없어요.
결국 스크린 위에서만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친구, 빔 벤더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