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각

얼굴

by 무화
내가 진짜 못생겼어?



오랜 시간 편지를 주고받았던 H의 그는 지하철역 입구에 서서 조심스레 손을 든 H를 앞에 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차 없이 돌아서 간 그는 연락을 끊었고 우리 펜팔 무리들은 진심을 다해 종류별로 고른 쌍욕을 날려준 후 그들 무리에게 집단 안녕을 고했다. 난 H의 질문에 답하기가 곤란해 매번 둘러대기 일쑤였으므로 말하자면 네가 쫌 예쁘지 않은 것 같긴 한데 네게 그걸 말할 용기도 없을뿐더러 그걸 말할 필요조차 모르겠고, 너의 얼굴에 대한 얘기는 나로선 할 수 없으니 대신 나의 그와 연락을 끊는 것으로 너를 위로하겠다. 식의 속내를 슬쩍 내비치고 글쎄 익숙하니까 난 모르지.. 딴청을 피웠다.



졸업과 동시에 은행 데스크에 취업이 가능했던,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더 문턱 높은 상업계 고등학교에 간 H는 '못'생겼으므로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고 대학에 갈 수밖에 없다 하였다. 이력서에는 키와 몸무게를 써야 했던 시절이었다.




가죽을 가공하듯 자신의 얼굴 ㅡ평판ㅡ을 가공하는 피혁공장 백사장. 타인의 불행에 편승해 기회를 노리는 포커페이스 김 pd. 멸시당하지 않기 위해 타인의 기준안에서 미추를 저울질하는 맹인 임영규. 그리고 단 한 번도 돋을새김 되지 못한 채 음각된 인간 정영희.



우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수많은 증언자들로 하여금 그녀의 추함을 고해 듣는다. 대체 얼마나 못생겼길래? 얼마나 괴물 같길래? 타자의 흉포한 시선과 집단적 무지성의 발로로 미스터리의 중심은 범인이 아닌 얼굴로 옮겨 가고 엔딩에서 드러나는 정영희의 얼굴에 각각의 잣대를 들이대며 씁쓸해진다.



'생각 보다'



저 사고의 기저에는 '보다'의 아래에 있는 경우에는 멸시당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말을 깔려 있는 것이다.



<얼굴> 은 보는 이에게도 임영규의 역할을 부여한다. 인터뷰를 거칠수록 증언자들의 표정과 말속에 든 무례와 악의와 선입견과 배타성이 뭉뚱그려져 만들어진 탁한 렌즈는 우리에게로 옮겨진다. 정영희의 뒷모습을 좇으며 못생긴 구석을 발견하려 애쓴다. 그녀가 음각될 수밖에 없는 보편적 당위를 찾으려는 듯 눈을 비비며. 굉장히 지독한 영화다. 긴박하고. 허나



연상호의 초기작들을 열렬히 좋아하는 나로서 <얼굴>은 그저 그렇다. 권해효와 백사장을 연기한 임성재외엔 지루한 연기였다. 박정민은 그냥 박정민이었고 신현빈은 겨울선생을 못 벗어났다. 증언자들의 연기는 죄다 극적이어서 피치가 너무 높았다. 연극이었다면 더 좋았겠다. 영화 <경계선> 속의 티나를 보는 시선처럼 한기가 느껴졌다면 어땠을까. 이 또한 <얼굴>이라는 영화의 얼굴만을 본 편협일지도 모르겠다. 원작을 봐야겠다.



얼마 전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택시를 탔는데 시각 안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기사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골목 사이사이로 카체이싱을 하듯 질주한 뒤 백미러로 빤히 보며 하는 말이 아주 가관이었다.



원래, 그냥 천천히 가는데에.. 손님이 예뻐서

제가 그런 거예요.

히죽대는 면상을 보니 멀미가 났다.



평가가 디폴트인 세상이 되었고 그 어떤 평가든 폭력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유례없는 솔직한 연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너 글 잘 쓴다. 사진 잘 찍네. 보다

당신의 문장이 좋아요 당신의 시선이 아름답다 느껴요 같은 순전한 1인칭이 좋다.

열다섯 살 H의 질문은 나의 것이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그녀의 생은 돋을새김 되었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나 예뻐? 하고 묻는다.

이런 줸좡,



얼굴》 연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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