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NSTER CALL
몇 해 전.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의 더위처럼
끝날 것 같지 않던 아버지의 생이 끝났다.
무망한 시간동안 나는 무용한 노력을 했고. 내 스스로 뒤집어 쓴 굴레는 시간이 흐르자 나를 조여 왔었다. 가족, 사랑, 부모, 도리, 책임, 효. 그런 단어들이 어떤 의미에서든 듣기조차 싫어지는 때엔 한 가지 단어만이 머리속을 점령했었다.
끝.
나를 제자리로 돌려보낼 끝.
이미 제자리라는 건 사라졌으므로 없는 것에 대한 갈망. 닳아 해진 채 쪼그라든 굴레에서 빠져 나오는 낡은 희망. 그러면서도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치게 했던 무의미한 열망.
내가 아버지를 구해내리라는 망상을 품으며 온갖 것에 의미를 부여했었다. 의미가 무의미로 전환될때마다 낙심했고 그 낙심의 한 귀퉁이로 번져 오는 낙관에 스스로를 두려워했었다.
그런데, 제자리 그런 거창한 건 애초에 없었다.
아버지의 병구완은 내게 과업 내지 사명, 일종의 코스프레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복잡하게 좋은 사람 행세를 했을 뿐이고.
이따금 그 날의 시계를 되돌려본다. 어땠을까, 왜 몰랐을까, 왜 그랬을까. 나는 기뻤나 슬펐나.
3년간의 한숨은 3일이 채 되지 못하는 시간안에서 '적절함'과 '고생'이라는 단어들을 거친 후 남은 일 '처리'에 내려앉았었다. 슬픔은 끼어 들 자리가 없었다. 뒤늦게 찾아 오는 시차의 문제가 아니라
기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낄 존재로서의 명은 다 한 후였기에 뒤늦은 나의 눈물은 아비를 잃은 나에 대한 슬픔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한 기억은 희미하다.
사랑받은 기억도 퇴색됐다.
사라지기를 바랐던 기억은 또렷하다.
어처구니없이 악역이었던 아버지에게 단 한 번 물은 적이 있다.
아빠는 나 언제 제일 예뻤어?
빠알간 원피스 입혀 놨을 때.
엄마는 왼쪽에, 오빠는 엄마 앞에 서있다.
아빠는 오른쪽에, 나는 아빠 앞에 서있다.
엄마와 오빠는 왼쪽으로 갸우뚱.
아빠와 나는 오른쪽으로 갸우뚱.
거푸집처럼 닮은 모자와 부녀는 무표정하게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고,
아빠의 두 손은 빨간 원피스를 입은 내 어깨 위에 얹혀 있다.
파라오처럼 염을 한 아버지의 주검은 그저 쓸쓸한 육신이었다. 밖에서 마주치면 언제나 내 손을 잡아 자신의 볼을 문지르던 굶주렸던 사람. 혼자 죽은 불쌍한 영혼.
공평한 게 한 가지는 있으니 그걸로 된건가.
사납든, 그렇지 않든 결국 우리 모두는 이야기가 될테니까.
다음 생엔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나 아빠.
들리지 않는 귀에 대고 말했었다. 울먹였는지 어쨌는지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신과 영혼, 다음 생따위 믿지 않는 나는 한 동안 그것들을 떠올렸다.
《몬스터 콜스》 시본 도우드, 패트릭 네스
제게는 하고 싶지만, 하기 싫은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이야기 하나쯤은 있을겁니다. 종양처럼 커져버려 언젠가는 떼어내야만 하는 이야기. 저는 결국 '그' 얘기는 하지 못했습니다. 담고만 있는 어떤 이야기는 다른 색을 더할수록 더 탁해지는 물감과도 같습니다. 쏟아 버릴 날도 올거라 생각합니다.
완전히 선한 사람도, 완전히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사이를 오가며 헤매는 울퉁불퉁한 주목나무 한 그루일뿐입니다. 코너처럼요.
● 도서 : 몬스터 콜스 - 시본 도우드,
패트릭 네스
● 영화 : A MONSTER CALL
Cinema Reading Enjoy Artistic
Moment 크림북클럽 202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