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렁이가 될 순 있다

prologue

by 무화


우리는 광대한 우주 먼지로부터 왔습니다.
작은 존재입니다.
흙 먹기를 두려워하며 땅을 파죠.
지렁이보다 나을 게 없을지도 몰라요.
내일, 지렁이보다 더 훌륭한 존재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죠.

터무니없는 것,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에게 친절해야 해요.
무쓸모의 쓸모에 대해 골똘해야 해요.
흙을 한 번 먹어봅시다.
숨어 있던 미뢰를 깨울지도 모릅니다.

비가 옵니다. 작은 여행을 떠납시다. 지렁이를 보러 나가는 거예요.
그거 아세요? 지렁이의 환대는 생식기의 역할을 합니다.
아이 때는 없던 환대가 어른이 되면 생기고 조끼를 벗듯 훌렁 벗어 재낀 환대가 알집이 되는 거예요.
환대가 생기면 환대받는 거예요.
재미있죠.
이제 여러분은 무지렁이에서 유지렁이로 1mm만큼 움직이셨습니다.

자연은, 성대한 푸르름은 숲 속에만 있지 않아요. 당신의 발뒤꿈치 아래에 고고하게 살아 있답니다.
그들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에요.
그들 생이 주는 유일한 가르침은 다만 존재의 행위일 뿐

경배해야 해요.



산책은 단조로움과 새로움이 결합해 있다. '늘' 똑같은 길로 들어서지만 '늘' 새로운 하루를 만나게 한다. 늘 새롭지만, 늘 똑같아지기도 하는 것이 연애와도, 여행과도 닮았다. 나는 삶-나-의 찌질함을 털어버리려 산책을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니체처럼, 어떤 시인처럼, 스스로 날씨가 되고파서 일지도 모른다. 날씨가 철학을 바꾸는 게 아니라 철학이 날씨를 바꾸는 상황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떠도는 구름’으로부터 ‘청명한 하늘’로.


찌질함을 힘들게 털 필요는 없다. 거리엔 우리보다 우아한 존재들이 넘쳐나니까.

삶에 햇살을 찾아주는 것도 가뭄 속에 간직된 비 향기를 기억해 내는 것도 생각의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니체, 차라투스트라, 어떤 시인, 나, 우리 집 개(가 있다면)조차도 다 알 일.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 사소하다고 여기는 나를 파괴해야 한다.

지렁이를, 지렁이가 바라보는 담쟁이덩굴을, 덩굴이 몸 붙이는 퇴색한 담장을, 담장 위의 어린 고양이를, 그 해사한 고양이가 움켜쥐는 빛을. 찬란하고도 무용한 모든 것들을 위해 미묘하게 슬퍼해야 한다. 아무튼 아무튼 詩가 돼버리고 마는 이 오래된 거리를 사랑해야 한다.

‘그냥’ 존재하고야 마는 작은 숲을 발견해야 한다. 그저 생동하는 자연을.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오, 그대들은 자연의 조짐에 대해 얼마나 조예가 깊은지!



내 재간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하지만, 아리게 푸르렀던 시절로 걸어 들어가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