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씨의 내장형 주크박스

늙은 갈잎의 노래 | 파어

by 무화


옆구리에 꿰어져 누운 채로 한 곳을 응시했다. 하얬다. 엄마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한다. 온갖 냄새가 뒤섞여 춤추는 머리카락이 코끝에, 속눈썹에 닿을 때마다, 무화씨는 좋고 싫었다. 인간에게 기억이란 재구성된 후보정물이므로 어떤 필터를 덧씌웠는지는 지금의 무화씨는 짐작키 어렵지만 그녀의 첫 번째 기억이라 불릴만한 특이점은 있다.



한 지붕 세 가족이 살았던 슬레이트 지붕집.

소박한 마당엔 수돗가가 있었고, 고무 물탱크도 있었다.(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무화씨는 뚜껑 위에 올라앉아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밥 먹다 물탱크로 입수한 적이 있다.)

하늘이 하얗게 보였던 그날. 거룩한 대소사를 앞둔 건지, 아니면 아빠가 맨 정신으로 멀쩡한 월급봉투를 가져와서인지는 몰라도



'왜 남편들은 짤 없이 들킬 거짓말을 매번 하는가' 혹시 이런 책이 있나요?



퍽 신이 나있었다. 여간해선 입꼬리를 올리지 않는 엄마가 시종일관 노래를 흘리고 있었다. 모종의 이유로 굉장히 행복에 겨운 날이었거나. 아낙들의 심상한 노동요였거나. 그도 아니면 그날 유독 무화씨가 어여뻤거나. 애미에게는 똥 잘 싸는 새끼가 너무나 어여쁜 시절이 있으니까.

비누거품이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손으로 뒤통수를 받치고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감기던 손을 기억한다.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손가락보다, 목덜미께를 받치던 엄지손가락 끝 볼록한 부분의 힘을. 무자비하면서도 호위하는듯한 그 아귀를.



엄마의 얼굴 옆으로 보인 하늘빛이 설원처럼 하얘서 어디를 응시해야 할지 무화씨는 몰랐다. 간지러워 감아버린 눈 때문에 코와 귀가 더 생생해졌는지도 모르고.



엄마아야. 누우나야. 강변 사알자.
뜰에에는 반짝이는 그음모래빛.
뒤이문 밖에는 가알잎의 노오오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사알자.



이석耳石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가.



귓바퀴를 따라 흘러들어온 그 노래, 그 는 음이 안착하기를 방해하는 무수한 이모耳毛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고막을 때렸다. 들리기는 하나 그대로 말하지는 못했던 시절의 언어. 반음만 내려갔을 뿐인데도 하염없이 서글퍼지는 언어. 강변이 뭔지도 모르고 갈잎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의 무구. 아름다움 뒤에는 슬픔이 뒤따르기도 한다는 걸 알지 못했던 순도 높은 감정과 비릿하게 향긋했던 비누향. 몸을 감쌌던 거친 수건의 감촉과 무지갯빛 크레파스로 색을 칠하고 검은색을 뒤덮어 긁어내듯 형형색색으로 뾰족하게 울려 퍼졌던 텍스트.

절대자의 힘에 휩싸여 온몸의 신경이 넘실댔다.



측핵이 활성화되는 의식의 경험, orgasmós



무화씨의 머릿속 주크박스는 그날 이후부터 작동하고 있다. 작동된다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이겠다. 동전대신 텍스트를 넣기만 하면 된다. 무상 보증 기간이 지났고, 부품 수리도 불가능하지만, 그녀의 언어가 모조리 소실될 그날이 올지라도 주크박스만큼은 삐걱삐걱 움직일 것이다. 다정한 노래를 부를 것이다. 강한 직감이야. 라고 그녀는 자주 생각한다.



엄마라는 세계에 의지와는 무관하게 무화씨는 피투 被投 됐다. 우악스러운 손과 언어에 쓸려 거스러미가 일어날 때마다, 그녀는 그날을 감각한다. 별 수 있는가. 베이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지 않고 세계를, 허무를 견디려면 googly eyes 든, 주크 박스든, 뭐든 달고 살아야지.



볼록하게 꿈틀댔던 엄지 뿌리. 점점 더 하강하는 목소리. 이제는 바스러져가는 늙은 갈잎의 노래를 추억한다.



추억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돌에게 불러주는 무화씨의 노래에게로 옮겨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