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희생 The Sacrifice

by 무화

무신론자에게 기도는 이루어짐이 아니다.

구원이 아니다.

삶을 살아내겠다는 다짐이다.

세계가 공명함을 느끼는 과정이다.

그저 때때로 잃을 준비를 하고 갈망을 정제해 파종하는 시간. 두 손을 그러모아 쥐고 온전히 나를 점검하는 시간.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sacrifice> 속 알렉산더는 가장 소중한 것을 불태워 제의한다. 말라 죽은 나무를 땅에 심고 물을 준다. 그의 기도는 시가 되었고 시는 기도가, 노래가 되었다. <시>의 미자가 쓴 <아네스의 노래>처럼 산화된 그의 생은 처연한 미학이라는 생경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




감독은 시한부 암선고를 받은 후 희생을 만들었다. 불타는 집을 촬영한 후 필름의 스크레치를 발견하고 재촬영을 하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경과됐다. 투병ㅡ실제로 투鬪보다는 받아들임에 가까웠을ㅡ과 함께 그의 유작이 된 이 작품 자체가 무감한 세계를 구하기 위한 제의처럼 느껴진 나는 149분의 러닝 타임동안 허리를 곧추세우고 함께 기도하고 탄식하고 환호했다.


적어도 한 인간을 구해냈으므로.


아니, 두 인간을.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 있던 고고하기 짝이 없는 생명을 바라본다. 누군가의 기도가 저기 피어 있다.






등대작가와 만나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는 그때 온갖 신들에게 기도를 했습니다. 심지어 성주신에게도요."

"그건 간절하기 때문이래요."


당신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같지 않으므로 간절함또한 같은 방식으로 도달하지 않는다.

결국 세계를 구원한 건 구구절절한 인간의 세계다.


때때로 당신이라는 세계.


he Sacr


<희생The Sacrifice> 타르코프스키

2024년 9월 4일

희생ㅎ The Sacrifice

희생 The Sacrif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