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테레즈라캥 | 포스트맨은벨을두번울린다 |이방인

by 무화



"태양을 한참 째려봤더니 말을 하데"



김복남살인사건의 전말 속 분노에 잠식된 복남은 낫을 휘두른다. 폐쇄된 사회에서 오로지 폭력으로만 소비된 그녀의 삶은, 감독의 비뚤어진 에로티시즘이라는 비난은 일단 차치하고 묘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를 추동케 하는 결정적 기제는 무엇이었을까.


김동인의 감자 속 얼른얼른하는 낫처럼 복남의 낫또한 뜨겁게 물결치며 대상을 찾는다ㅡ공교롭게도 두 여인의 이름에는 복福이 들어간다ㅡ



이방인의 뫼르소에게는 태양으로.

포스트맨의 프랭크에게는 고양이로.

또 테레즈 라캥의 로랑에게는 피로 내리 꽂히는



갈증.


그들의 삶은 바짝 쪼그라들어 있다.

속눈썹 위에서 오르내리는 뜨거운 소금 결정처럼 억압된 그들의 생은 너무 짜다. (실제로 지지리도 짠내 나는 삶들이다) 바닷물을 제아무리 들이킨들 갈증이 해소될 리 없지.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는 '바틀비'처럼 끝까지 저항하는 뫼르소는 통념을 깨는 인물이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하는 통념들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그의 역할은 충분하다. 당연한 건 없다.

살아보니 그렇다.


자연주의 테레즈 라캥

하드보일드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실존주의 이방인


이 세 작품들 모두 Thirsty 가 관통한다.


불필요한 수식이 없다.

멍청한. 때로는 섬뜩한 남녀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서정적이기도 하고, 얼핏 낭만적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아. 문장이 이렇게 근사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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