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이처럼 사소한 것들
'Meditations 17'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 완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륙의 한 부분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간다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어느 곶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고,
그대의 친구 혹은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니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니 저 조종(弔鐘)이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그 조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ㅡ 존 던
《이처럼 사소한 것들 &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낯선 이로부터의 환대는 두렵고 아프다. 미처 알지 못했던 공동 空洞이 그 자리에 쭈욱 있어 왔음을 알아차리는 건 너무나 생경한 고통이다. 그러나 숭고하고 장엄한 의식처럼 차곡차곡 채워지는 '무언가 다른 사소한 것'으로, 그 알아차림은 섬려한 환희로 바뀐다.
'맡겨진 소녀'속 킨셀라 부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펄롱은 낯선 존재다. 그러나 그들은 예언된 일을 수행하는 수행자처럼 해야 할 일을 한다.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바로 그곳에 우리가 구해야 할 이들이 있을 때 눈 감지 않는다. 심지어 킨셀라 부부와 달리 펄롱은 자발적으로 위태로움을 끌어안는다. 부지불식간에 온몸으로 받아 온 사소한 환대를 되돌려 주는 일은 마치 사명이 된 듯하다. 허나...스스로 선택한 파멸을 용기라고 칭송만 하기엔 나의 세속은 아직 어리다.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오솔길을 따라 밭을 다시 지나올 때 내가 아주머니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없으면 아주머니는 분명 넘어질 것이다. 내가 없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다가 평소에는 틀림없이 양동이를 두 개 가져왔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때가 생각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고, 기억할 수 없어 행복하기도 하다. ㅡ 맡겨진 소녀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ㅡ 이처럼 사소한 것들
킨셀라 아주머니가 소녀의 머리카락을 빗겨주는 것, 펄롱이 엉킨 머리카락의 소녀를 바라보는 것,
사소한 것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우리는 안다. 펄롱이, 킨셀라 부부가 구한 것은 비참하게 살아가는 소녀가 아니라 어쩌면 바로 그 '자신'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펄롱에게 농장이 그려진 500피스 지그소 퍼즐은 이제 결핍이 아닌 용기일 것이다. 산산조각 난 세계를 한 조각 한 조각 맞춰 가는 일은 더없이 숭고할 것이다. 인간이 대륙의 한 조각이듯 하나의 삶을 완성해 내는 것은 결국 한 피스의 퍼즐 같은 사소함이기 때문이다.
● 도서 : 이처럼 사소한 것들 & 맡겨진 소녀 - 클레어 키건
● 영화 :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킬리언 머피 & 맡겨진 소녀 - 콤 바이레드
맡겨진 소녀를 우리 집 소녀와 소녀의 친구와 읽은 후 결말 이어쓰기를 권했다.
소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더 이상의 덧붙일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아!"
오호..너는 고수구나.
키거니언식 결말이라 부르더라.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나면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모든 걸 다 알고 난 후 다시 읽게 되는 문장들은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은 듯 짐짓 비장해진다. 거들먹거리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킬리언 머피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아...
택시 운전사의 송강호?
나의 아저씨가 있었지....
2023년 1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