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 The Reader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감회가 어떤가?
2016년 6월. 첫 장을 넘길 즈음이었다. 햇살과 커피와 책이라는 더없는 즐거움을 빼앗았던 그 전화가 떠오른다.
... 따님 되십니까? 예. 그런데요. 아버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빨리 오셔야겠어요.
그날 이후 아버지는 복합적 문맹의 길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나는 아버지옆에서 책을 읽으며 침울해했고ㅡ내가 책을 계속 읽자 과거 속에 있던 아버지는 나를 대학생으로 착각하셨다. 하.. 회춘당했군. 나는 부러 크게 웃었다ㅡ이 책은 문맹이라는 강렬한 키워드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왜곡된 기억 내지는 빈약한 독서였음을 느낀다. 이제 와 감회랄 것까진 없고 늙음과 동시에 독서력을 획득한 것 같아 나름의 흐뭇함이랄까?
문맹이 주요 키워드인 건 맞지 않나? 그럼 이 책을 한 단어로 축약해 보시라.
수치羞恥심.
19금 사랑이야기, 홀로코스트, 법, 문맹.
이 자극적인 소재들 모두 우리의 수치심을 필연적으로 끌고 온다. 한나는 문자를 익히지 못했고, 법을 알지 못했다. 어른의 몸을 하고 있으나 미성숙한 상태. 즉 미성년에 가까웠고 이는 자신이 하는 여러 일들의 정당성, 사회적 시선 내지는 중차대함을 인지하지 못하게 했다. 문맹인으로 살았던 부끄러움보다 글을 습득한 후 알게 된 나치 부역자로서의 부끄러움. 또는 어린 소년과의 관계에 대한 성찰. 이런저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걷잡을 수 없는 수치심으로 귀결되지 않았을까 한다. 스스로를 단죄할 수밖에 없는 '진짜 성인'이 된 셈이다.
문맹을 벗어나ㅡ인지적, 도적적 문맹 모두를 포함ㅡ수치를 알게 된 자와, 문맹을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한 이야기로 나는 갈무리했다.
한나가 문맹인의 삶을 그리 오래 고수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 정도의 근면 성실함을 가진 자가, 심지어 노인이 되어 독학으로 글을 깨우친 자가. 어떻게 생각하나?
첫 번째는 한나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귀로 듣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감각적인 부분에서의 가정. 실제로 소년에게 나는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말하기도 했고 찬송가를 듣는 장면에서는 더없이 황홀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시각보다 청각이 더 중요한 사람에게 글자는 무의미하고 글자로 된 법은 무가치하다. 그저 몸으로 터득한 나름? 의 도덕적 판단만이 있을 뿐.
두 번째 가정. 작가는 법대 교수이자 판사다. 법 밖에서 살아가는 자의 '어찌할 바 모르는' 상태와 또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을 모국어를 읽지 못하는 상태의 삶을 표현한 게 아닐까 한다. 문맹이 디폴트값인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과 선택은 지독한 그로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저 도망치는 것일 뿐. 우리는 모르는 거다. 글자를 모르면 글자를 배운다!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상태. 미성년자들은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우선 도망친다. 문맹인 한나도 미성숙한 자였으므로 도망치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문맹이 탄로 나는 것도 두렵지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 또한 거대한 공포였을 것이다. 루스 렌들의 <활자 잔혹극> 속 유니스 파치먼처럼.
세 번째 가정. 한나의 전사가 없고, 그녀의 문맹퇴치를 위한 과거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전후 구세대의 안일하고 비적극적인 태도를 극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글쎄. 가정은 가정일 뿐.
그렇다면 한나는 왜 뒤늦게 글을 깨우치기로 한 걸까?
18년 동안 갇힌 삶을 사는 자가 할 수 있는 건 끝없는 복기일 것이고, '왜'라는 질문일 것이다.
답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눈으로 목도하는 것. 들려주는 사람이 더 이상 없을 테니까. 괄호 쳐진 이 부분들에는 한나의 처절한 사투가 있었을 것이다. 독자에게 여지를 주는 한편 한나에게 서정적 면죄부를 주지 않기 위해 서술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감옥에서 달리 무얼 하겠는가? 혼자 책을 읽고 혼자 글을 쓰는 거지. 씁쓸하고 쓸쓸하다.
죽은 자들만이 나를 이해한다?
출소 직전의 한나에게 미하엘이 느낀 게 있냐고 질문한다. 한나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은 중요하지 않으며,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존자 유대인 여성에게 미하엘이 찾아가 한나가 사실 문맹이었음을 알릴 때도 그녀는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죠? 불쌍하니까 이젠 용서하자고? 한나가 문맹이었다 한들 그녀의 행동이 수많은 유대인을 죽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법대 교수와의 대화에도 한 번 더 언급된다. '중요한 건 우리의 감정이 아니야. 우리의 행동이지.' ...... 여기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건 생각이나 의도보다 중요한 건 행동이자 결과라는 것. 사람들은 행동만으로 한나를 평가하고 재단한다. 이해에 가닿지 못한다. 미하엘도. 우리도. 한나 스스로도 그렇다 여긴다. 그럼 그 행동을 한 주체가 누구냐? 한나는 아마도 정신보다 육체 쪽에 더 큰 비중을 둔 것 같다. 몸이 한 행동은 이해 ㅡ용서ㅡ받을 수 없지만, 몸이 없으면 한나의 생각과 의도들을 이해해 주리라 믿은 것이 아닐까. 똑같이 몸이 없는 죽은 자들이니까......
[행동은 나름대로의 원천이 있으며, 나의 생각은 나의 생각이고 나의 결정은 나의 결정이듯이 나의 행동 역시 독자적으로 나의 행동인 것이다]
● 도서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 영화 : The Reader - 스티븐 달드리
Cinema Reading Enjoy Artistic
Moment 크림북클럽 2024년 1월